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받을 때 이미 새로운 영적 존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겉사람이 자신이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적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처해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도 왜 내 삶은 변화되지 않을까?’ 라는 고민으로 죽을 만큼 괴로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새로운 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자기 의’가 ‘하나님의 의’로 변화되는 실제적인 시간이자(고후 5:21), 속사람이 겉사람을 뚫고 나오는 시간이고(고후 4:16),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할 때이며(롬 8:13), 육의 생각이 아니라 영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이고(롬 8:6),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 무엇인지 경험할 때입니다(롬 8:14).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경험할 때이고(고후 5:7), 자신을 통해 기름부으심이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할 때입니다(요 7:38). 할렐루야! 이것을 이해한다면 예수님께서 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4,25)

여기에서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과 육신이 자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온갖 더럽고 추한 생각과 감정을 주님께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거짓 자아는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을 떠난 분리로 인한 죄책감과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함으로 인한 공허함과 무가치함을 부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직면하게 되면 거짓 자아는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죄의식 그리고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붙들고자 애쓰는 대신 자신을 예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우리는 이 거짓 자아를 일평생 자기라고 믿었고, 자기를 잘 가꾸고 나타내기 위해서 일평생 노력해왔기 때문에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죽음, 곧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기를 가장 두려워합니다. 마귀가 이 땅에서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기 위해서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한 죄 사함을 통한 중생뿐만 아니라 우리를 겉사람(거짓 자아)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또 여기에서 언급한 목숨은 하나님의 생명이나 우리의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 즉 우리의 정신이나 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거짓 자아의 정체성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 2:14,15)

왜 겉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요? 자기의 내면을 하나님의 참 빛으로 비추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도 오랫동안 동굴 안 어둠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빛이 임하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궁극적인 이유는 참 진리가 임하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지요. 거짓 자아는 하나님을 부정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것이므로 그만큼 자신을 바꾸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19,20)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 13:14,1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구원을 받는 것은 혹은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혹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도 하나님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존재의 변화와 현실적인 삶의 변화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체성의 혼돈을 갖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면 우리의 삶이 갑자기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즉 속사람이 자신인 것을 알고 매일매일 자신의 겉사람을 죽이는 일을 평생 지속해나가는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난 영적 어린아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배우며 성장해나가는 것이지요. 이것을 ‘성화’ 즉 “구원을 이루어가는 삶”이라고 합니다.

매일 주 닮게 하소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2)

우리는 본질적인 변화에 대한 말씀을 삶의 변화에 대한 말씀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의 말씀을 주셨고,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내 삶은 변화가 없을까? 수많은 주의 약속은 왜 이루어지지 않는가? 왜 그 약속들이 요원하게만 느껴지는가? 도대체 얼마나 더 헌신하고 노력해야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가? 모든 주의 약속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 천국에서나 이루어지는 것인가?’ 등의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조차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은 다음에도 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속사람이 겉사람을 뚫고 나타나는 것은 일평생 동안 이루어져야 할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 말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베드로 전서 1장 9절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 고린도전서 15장 31절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4장 11절

† 기도
주님 제 안에 있는 겉사람을 날마다 죽이는 일을 멈추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세요.

† 적용과 결단
오늘도 겉사람을 죽이며 새로운 피조물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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