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따라걷기 #05] 예루살렘과 그 주변 : 통곡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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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
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마 24:1,2)

신앙이 깊은 유대인들이 오늘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의 한 장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10명 중 9명은 서쪽 벽(Western Wall)을 꼽을 것입니다. 서쪽 벽이라고 하면, 다들 어디인가 어리둥절할 수도 있고 성지순례를 해본 사람들도 몇몇 분은 ‘나는 거기 가본 적이 없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인들이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곳을 유대인들은 “서쪽 벽”이라고 부릅니다.

서쪽 벽이라는 이름은 옛 예루살렘 성전(마당을 포함한 모든 성전)서쪽의 벽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유대인들이 서쪽 벽을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랍비들의 전통 때문인데요, 성전은 무너졌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율법을 따라 일 년에 세 번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온들 성전이 없어진 마당에 제의(祭儀)를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그래서 성전으로 남아있는 흔적으로는 가장 큰 이곳 서쪽 벽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유대인은 서쪽 벽을 가장 거룩한 장소로 여겼습니다.

현재 유대인들이 “성전산”이라고 부르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는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뀌어 있습니다. 과거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가 정확하게 어느 곳에 있었는지는 연구하는 학자나 랍비마다 조금씩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랍비들은 ①거룩한 성전에는 제사장만 밟을 수 있는 땅이 있는데 그곳이 어딘지 정확히 모르고, ② 이슬람의 성지가 되어버린 곳에 전통을 따라 살아가는 종교인들의 출입이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서쪽 벽을 유대인들의 가장 거룩한 장소로 규정하고, 많은 유대인이 기도하기 위해서 모여든다고 보고 있습니다.

서쪽 벽은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이미 거의 모든 곳이 발굴되어, 과거 성전이 얼마나 웅장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남아있는 이 성전 유적은 헤롯 대왕(74 BCE-4 CE)에 의해서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 없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혈통상 유대인이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문제로 정체성을 의심받던 헤롯은 당시 유대교와 유대인으로부터 환심을 사고 지지를 얻으려고 과거 예루살렘 성전을 증축하고 보강하여 유대 땅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합니다(사실 거의 새로 지었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기원전 19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사실 언제 끝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장식하고, 부족한 부분을 고쳐가는 공사를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헤롯 대왕이 보았던 성전의 모습은 예수님이 보셨던 성전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으리라는 것이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헤롯의 증손자인 아그립바 2세(재위 48-66년) 때에 완공이 되었다고 하니, 예수님 당시에도 예루살렘 성전은 늘 공사하는 사람들의 돌 쪼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전의 운명은 기구합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년!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 후 5년도 못 되어서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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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에 온 유다 땅이 완전히 함락되고 나서, 폐허로 남겨진 예 루살렘과 그 성전 주변에 살던 유대인들은 다시 로마에 대항하여 항쟁을 일으키는데(바르 코흐바의 항쟁), 135년에 이 항쟁이 실패로 돌아간 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강제 추방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지역으로, 또는 지중해 연안으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 후 2,3세기에는 로마 황제가 때에 따라서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출입을 간헐적으로 허락하기는 했습니다만,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콘스탄틴 황제 때에 이르러서야(313년) 비로소 유대인들이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성전 멸망 추모일(아브월 9일)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기도하는 것을 허락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산의 무너진 서쪽 벽, 그나마 성전이 서 있었던 성전산의 흔적으로 가장 잘 남아있는 이곳에서 대규모로 함께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정기적인 예루살렘 출입이 허용된 후, 약 100여 년이 지난 425년에 공식적으로 다시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거주가 허락되었으니, 서쪽 벽이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을지는 아마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벽을 만지며 성전의 멸망을 슬퍼하고, 하나님의 집이 이런폐허가 되기까지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여 자신들이 받게 된 고난에 대해서 회개하는 눈물과 통곡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보며 이 벽을 ‘통곡의 벽’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한가지 더 있습니다. 성전이 무너지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단지 그들이 기록된 율법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37-39).

그들은 율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율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옳게 해석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려준 예언자들의 외침에 귀를 막았고, 그들의 입을 틀어막으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전하신 복음을 짐짝처럼 내던져 버렸기에 당했던 아픈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아직 갖지 못한 것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 없습니다.

글 = 이익상 / 내용 발췌 = 이스라엘 따라걷기
감리교신학대학교 구약학 석사와 히브리대학교 성서학 석사를 거쳐 텔아비브대학교 성서학 박사 과정 중이며 현재 춘천중앙교회 부목사로 있다. 2012년부터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를 받은 비영리 단체인 성서학 연구소 ‘비블리아’의 대표로 활동해왔다. 현재 팟캐스트 비블리아의 운영자로 성경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학문과 신앙으로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다. 그는 성경과 관련된 모든 것의 저작권자는 하나님이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배움과 섬김을 실천하는 학자이며 목회자이다. 성경과 성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애정과 통찰력 있는 가이드로 이스라엘을 찾은 많은 순례자들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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