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따라걷기 #06] 베들레헴과 그 주변 : 목자들의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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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눅 2:8-12)

광야의 목동 : 광야에서 조상들이 살아온 전통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베두인”이라고 부른다. 광야에 사는 베두인 남자들의 가장 보편적이고 중요한 일은 양과 염소를 돌보는 일이다. 여자들은 주로 집 주변에서 양과 염소를 소규모로 돌보고, 남자들은 흩어져서 광야에서 양과 염소들에게 풀을 먹이다가 저녁이 되면 텐트로 돌아온다.

‘목동’이라고 하면 무언가 목가적인 낭만이 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푸른 풀밭에 양 떼들을 풀어놓고 풀피리를 불며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달게 자고, 밤의 별을 보면서 별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며 재미있는 별들의 이야기를 엮어내는 그런 이미지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목자의 모습이지요. 기독교인들에게 목동은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되어 더 좋은 이미지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이들 역시 “목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예수님께서 어깨에 어린 양을 들쳐 메고서 긴 지팡이를 짚고 양 떼들 사이를 걸어가시는 성화(聖畫)를 떠올리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양치기는 그리 좋은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단 미쉬나(Mish. Kidd. iv.14)에서는 목자들을 부정한 직업 중의 하나로 분류해놓았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목자들은 안식일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야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지만, 양과 염소들이 안식일이라고 우리 밖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고, 안식일에 위험을 당한 양과 염소 를 목동들이 구해내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지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목자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 가운데 정직하지 못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양과 염소를 치는 목자들의 많은 수는 고용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양과 염소를 소유하고 있는 부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양과 염소들을 가족들만으로는 돌볼 수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목자들을 고용해서 그들에게 양과 염소들을 몇백 마리씩 맡기게 되지요. 그런데 그냥 구두로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염소의 출산 : 양과 염소가 임신하면 목동들은 수태한 양과 염소의 등에 색을 칠한다. 색이 칠해진 양과 염소로부터는 젖을 짜내지 않기 위해서이다. 삯꾼 목자들이 암양이나 암염소의 등에 색을 칠하지 않는다면, 대규모의 목축을 하는 주인은 얼마나 많은 양과 염소들이 임신했는지 알기 어렵다.

광야는 그저 평화로운 초원이 아닙니다. 양과 염소를 노리는 늑대, 여우, 하이에나들이 득실거리는 생존의 전장입니다. 그러다 보니 양과 염소를 지키는 과정에서 목동들은 자기의 생명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동물보다는 역시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겠지요. 그래서 계약을 할 때는 목자의 의무로 양과 염소를 최선을 다해 지킬 것을 요구하지만, 목자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 포기할 수 있는 양 과 염소의 수를 정해두었습니다.

문제는 아무런 문제없이 돌아오는 길이지요. 목동의 머릿속에는 그 계약의 내용이 어른거릴 겁니다. 내가 끌고 나간 양과 염소에 그 수가 한둘 빠진들 계약상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한두 마리 챙기기 시작하는 거지요. 목자들이 유혹을 가장 많이 받는 기간은 1월경입니다.

광야가 푸른 초장으로 변하여 신선한 풀들로 뒤덮일 이때가 양과 염소가 출산하는 시기이거든요. 목자를 고용하여 목축을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양과 염소를 가진 이들은 자기 소유의 가축 가운데에서 몇 마리가 암컷인지, 그리고 먼 곳으로 풀을 뜯으러 나간 암양과 암염소 가운데 몇 마리가 수태했는지, 대략 몇 마리가 수태했다고 치면 그중에 몇 마리가 순산을 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머릿속으로 대략 몇 마리의 새끼 양과 염소가 태어나겠지 생각할 뿐입니다.

이런 주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목자들입니다. 목자 생활을 한두 해 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결국 태어나는 새끼 양과 염소 중에 몇 마리는 내다 팔아서 자기의 호주머니를 채울 수도 있고, 몇 마리는 잡아먹을 수도 있고, 몇 마리는 자기 집에 가져다 놓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계약의 허점과 자기가 가진 위치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만 있다면, 일 년에 몇십 마리 양과 염소를 뒤 로 챙기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양과 염소를 은근슬쩍 챙기지 못한다면, 아마 목자들 사이에서 고지식한 사람 정도로 치부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고용된 목자(삯꾼 목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요 10:7-18)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런 일들이 예수님의 비유에 인용되리만치 당시에는 비일 비재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유대 땅에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첫 소식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사실 누가복음에서는 이 목자들이 고용된 목자들인지, 아니면 그 양들의 주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전해진 것은 예수님께서는 삯꾼이 아닌 참 목자로 이 땅에 오셔서 자기의 양과 염소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목자들의 들판 : 교회의 동굴 목자들이 양과 염소를 데리고 광야에 나갔다가 밤을 맞이하게 되면, 가까운 동굴로 양과 염소를 밀어 넣고, 허리춤까지 돌을 쌓아서 우리를 만든다. 아마도 예수님 탄생 소식을 전해 들은 목자들도 동굴에 잇대어 만든 우리앞에서 천사를 만났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목자들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저마다의 양과 염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참 목자로 오신 것처럼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목자로 서게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때로는 내게 맡겨진 짐이 무겁다고, 또는 다른 생각으로 삯꾼처럼 그 양과 염소들을 내팽개칠 수도, 잡아먹을 수도, 팔아서 내 이익을 챙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참 목자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대로 참목자가 되어서 그 작은 하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글 = 이익상 / 내용 발췌 = 이스라엘 따라걷기
감리교신학대학교 구약학 석사와 히브리대학교 성서학 석사를 거쳐 텔아비브대학교 성서학 박사 과정 중이며 현재 춘천중앙교회 부목사로 있다. 2012년부터 이스라엘 정부의 허가를 받은 비영리 단체인 성서학 연구소 ‘비블리아’의 대표로 활동해왔다. 현재 팟캐스트 비블리아의 운영자로 성경과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학문과 신앙으로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다. 그는 성경과 관련된 모든 것의 저작권자는 하나님이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배움과 섬김을 실천하는 학자이며 목회자이다. 성경과 성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애정과 통찰력 있는 가이드로 이스라엘을 찾은 많은 순례자들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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