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관계에 대한 갈망은 종종 예수님과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큰 소리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라고 말씀하셨는데, 삶에서 육체적 장애만큼 우리의 영적 가난을 상기시키고 기도하도록 이끄는 것은 거의 없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육체적 장애는 종종 우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는 착각을 불식시킨다.

고통과 절망은 건강한 상태에서는 너무 자주 미루는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장애는 우리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격려한다. 예수님이 종종 장애를 사용해 사람들과 연결하는 다리를 놓으시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느 날 그분은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다고 알려진 사람을 만나셨다. 제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던 편견을 말로 표현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그들은 그의 측은한 상황을 편안하게 설명해줄 쉬운 신학적 대답을 원했다. 또한 그들은 그와 같은 운명이 그들이나 그들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닥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키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죄를 지었습니까?”라고 물은 것도 아니고 “누가 죄를 범했습니까?”라고 물은 것을 주목하라. 그들은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죄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장애의 과학적 원인들에 대해 좀 알게 되었고, 따라서 이런 결론을 내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을 너무 매정하게 대하지는 말라. 우리라고 그들보다 더 동정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초점, 즉 그 사람이 맹인인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사람을 찾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누가 죄를 범했느냐?’라는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람의 고난에 있어서 주체는 맹인이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일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사실적인 예를 통해 보여주셨다. 그분은 몸을 굽혀 땅에 침을 뱉고 그 침으로 진흙을 이기셨다. 그 다음에 손가락으로 그 진흙을 퍼서 연고 바르듯이 그의 눈에 문지르셨다. 그리고 그 맹인에게 가까운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그는 아마도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인 상태로 몇 백 년 된 그곳, 예루살렘 성벽에서 히스기야의 터널이 나타났던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몇 분 뒤, 그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이야기는 행복한 절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그 사람을 낫게 하셨는데, 유대 지도자들은 그것이 금지된 일이라고 했다. 새 운동에 대한 신임도를 떨어뜨리려 했던 그들은 예수님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회당에서 쫓아냈다. 이것은 사실상 그를 공동체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배제시킨 것이다. 1세기 이스라엘에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그 다음에 우리는 이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된다.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 요 9:35-38

예수님은 상황을 파악하시고 그 사람을 찾아 개인적으로 관계를 맺으셨다. 그러면서 그의 눈이 잘 보이는지, 또는 그가 새로운 교회를 찾을 수 있는지 물으신 것이 아니라 그의 영적인 급소를 찌르셨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사는 육적인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이 영적인 눈도 떴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네가 나를 아느냐?”라고 물으신다.

네가 나를 아느냐?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으나 종교적인 지식인들에게 비천한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즉 그들은 그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났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억압받고 멸시당하는 자들에게 다가가 동일한, 그리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신다.

“네가 믿느냐?”
과거에 맹인이었던 사람처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예”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님을 보고 그분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눈을 가졌는가?

† 말씀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요한복음 9장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요한복음 39~41절

† 기도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더욱더 주님을 알길 원합니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두고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기에 힘쓰는 자녀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왜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 그토록 애쓰시는가? 그리스도인에게 관계의 소망은 무엇인가?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