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토크 #12]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지옥은 왜 만들었나?

1
355
4,839

하나님께서는 우주를 창조하실 때 아주 정교한 법칙을 세워 만물을 유지하시고 지금도 쉼 없이 운행하신다. 나무는 뿌리를 땅에 박고 있어야지, 땅을 박차고 뿌리를 하늘로 뻗치면 살 수 없다. 물고기가 물 밖이나 공중에서 못 살듯 인간은 물속이나 대기권 밖에서는 못 산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물리적 법칙뿐만 아니라 도덕적 법칙에도 예속된다. 창조주는 전능하시고도 거룩하신 분이며, 그 거룩한 형상의 특성은 인간만이 가진 양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우주의 물리적 세계는 법칙대로 질서정연하다. 우주의 일원인 우리의 몸도 준법정신 하나만큼은 투철하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노쇠하면 죽는다.

단 한 곳 ‘치외법권’ 지대처럼 보이는 데가 있다. 제멋대로 고삐 풀린 듯한 인간의 죄악상이다. 양심에 새긴 창조주의 도덕법을 어기는데도 즉사하지 않는다. 우주는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세상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의 온갖 죄악으로 어수선하다.

우주의 물리적 운행에는 빈틈없이 적용되는 법이 왜 인간의 도덕성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까? 지금 이 지상에서 활개 치는 악인들을 처벌하는 일에 왜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는 방관자처럼 보일까? 답은 하나이다. 지옥이 있기 때문이다.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전 8:11)

우주를 만들고 만물의 운행법칙을 주관하는 통치권자가 전능하기만 하고 선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악한이라면 어떨까? 만일 그렇다면 지구의 하루가 24시간이다가 어느 날은 17시간 28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우주는 예측 불가능한 무질서와 대혼돈에 빠질 것이다. 인간의 삶도 뒤죽박죽 어디 하나 안정된 구석이 없게 될 것이다.

거룩함과 신실함의 속성이 따르지 않는 전능함은 불완전하다. 그 자체가 통제 못할 악이 될 수도 있다. 창조주의 전능함으로 정교하게 지어진 우주 만물은 그분의 선하고 신뢰할 만한 주권과 통치권 아래 존재할 때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은 바로 이 주권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반항이요 불순종이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통치법을 어긴 죄인을 차후 지옥에서라도 공정하게 심판하지 않으신다면, 그분 자신이 죄인이 되실 것이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범인은닉죄’의 공범자로 전락시키는 무모한 시도이다. 온 우주 가운데서 티끌만 한 죄 한 톨이라도 그냥 눈감아준다면 우주의 떳떳한 통치자가 될 자격이 없다. 우주 공간 어느 한 귀퉁이에라도 얹혀사는 한 이 엄격한 통치권의 영역에서 예외인 자는 없다.

첫 사람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끊어지면서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었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모른다. 물론 양심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기준을 어느 정도 감지한다. 도덕적인 선도 웬만큼 행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선은 전혀 행할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악인이나 죄인은 살인, 강간 같은 흉악한 죄를 범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 상태가 이미 가장 큰 죄의 본질이요 영적 죽음이다. 범죄는 그 죽음의 가시적 열매들에 불과하기에 티끌만한 죄도 낱낱이 문제가 된다. 영적인 죽음은 영원한 지옥 말고는 다른 어떤 종류의 형벌로도 대가 지불이 안 된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마 5:26)

예수님의 경고는 세세한 범죄 항목 이전에 영적인 죽음 자체를 문제 삼으신다. 그래서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만 해도 살인죄와 같고,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죄와 같다(마 5:21-30). 심지어 수군거리거나 자랑하는 것, 비방하거나 교만한 것, 무정하고 무자비한 것까지도 하나님께는 모두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이다(롬 1:32).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신”(롬 1:28) 결과이다.

인간이 아무리 도를 닦아도 이 속병을 어찌할 수 없다. 위대한 작가나 종교인일수록 이 속병의 실상에 더 철저히 진실하게 절망한 사람들이다. 영적 죽음을 인정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고는 누구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죄를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죄를 지은 사람이 죽은 후에 가야 할 지옥도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지옥이 없다면 거룩하신 하나님도 없다. 지옥이나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힌두교나 불교, 이슬람교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교와 신화들에서도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왜 그럴까? 실제로 천국과 지옥이 있기 때문이다.

어디엔가 천벌이 반드시 있어야 공평하다는 생각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본능적으로 스며 있다.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의 깊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자리할 수 있을까? 이런 타고난 도덕의식 또한 사후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거들 가운데 하나이다.

모든 사람은 다 반드시 죽는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라고 말씀한다. 죽음은 사람들이 지은 죄 탓이라는 것이다. 죄가 없는 사람은 안 죽는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죽음을 맞아야 할 사람이라면 누가 되었든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 완전히 거룩하셔서 모든 사람을 심판하지 않으실 수 없는 그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죄를 해결해줄 그 화목제물을 올바로 찾는 것이 어쩌면 죽음을 앞둔 모든 사람의 일생에서 가장 중차대한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죽고 나면 영원히 살아야 하는 존재이므로, 그 영원을 어디서 보낼 것이냐는 각자에게 너무도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면, 그것을 확인한 데 그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반드시 그 하나님을 미리 만나서 죽기 전에 각자의 죄를 그분에게 직접 용서받아야만 한다. 이것은 죽기 전에 이 땅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특히 인간의 죄 문제를 그토록 심각하게 다루는 것이다.

성경은 최후 심판의 날,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이 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온다고 경고한다. 그 심판대에는 모든 사람 각자의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펼쳐지고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0:11-15)

이런 심판에 관해 죽기 전에 이 땅에서 내 눈으로 미리 볼 수 있고 미리 경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만약 이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그냥 지나친다면 결국 죽고 난 후 여기에 기록된 이 최후 심판의 현장에 서서 이 이야기가 정말 진실한 기록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온다. 완전히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절대로 거짓말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분의 책인 성경에는 거짓말이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각자 우주 공간에 떠 있는 둥근 지구에 매순간 발 딛고 사는 것 자체가 중력 없이는 불가능한 기적이다. 그런 만큼 날마다 창조주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안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각의 사람이 이 지상에 사는 동안 그 하나님을 만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죽은 후에 반드시 그 문제에 영원히 발목을 잡히고 만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다가 죽은 후에야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죽은 후 지옥에 갈 확률이 50퍼센트만 되어도 상당히 높은 확률이다. 내가 영원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의 문제에서 확률이 50퍼센트가 아니라 49퍼센트, 아니 1퍼센트만 있어도 상당히 큰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더구나 한 번 죽고 난 후에는 누구도 다시 그 죽음을 돌이킬 수 없다면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할까? 죽고 나서 ‘아이쿠, 이거 하나님이 계셨구나. 지옥도 있었네’ 하게 된다면 그보다 낭패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그걸 내가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무심하게 대답하고 넘어가는 것은 아주 위험천만한 일이다.

사람들이 막연하게 동경하는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는 실제로 존재한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우리를 하나님이 계시는 그 천국으로 인도하시려고 모든 사람 각자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고, 그 죽음이 속죄의 효력이 있다는 사실을 공포하시려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그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죽고 나서 부활할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았고, 실제로 부활한 사례도 없다. 그러나 그 자신이 생명을 창조한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은 달랐다. 그분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거라고 죽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고, 그 예언대로 부활하셨다.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죄인 각자가 자신의 죄로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지고 죽으시고 그 대속의 효력을 입증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천지만물을 만드신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당신이 그 하나님을 떠나 살던 이전의 모든 죄의 뿌리에 대해 진정으로 회개하고 이 구원의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그분이 계신 천국에 갈 수 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원의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