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기도가 우리의 바람대로만 응답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떤 응답은 단순히 기다려야 한다.

내가 새 신자였던 고등학교 시절, 믿는 친구 몇 명이 흥분해서는 나를 그들 교회의 집회에 초대했다. 유명한 ‘신앙 치유자’가 그 도시에 올 예정이었고, 사람들은 나에게 참석을 강권했다. 평생 앓아온 나의 뇌성마비를 그 사람이 확실히 치료해줄 거라고 확신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런 의미를 내비친 것이 분명했다.

나는 혼자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요 5:6)라는 예수님의 질문이 특별히 와 닿았다. 물론 나는 장애와 그로 인한 고립감, 그리고 그것이 낳은 크고 작은 굴욕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천막 아래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 이 사람에게 기도 받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앞으로 나간 사람들의 이마를 세게 쳤다. 다행히 돕는 자들이 항상 그들을 붙잡아주었다. 이것은 “치유되었다”라는 표시였다.

나도 곧 일어나 나갔고, 그 신앙 치유자 앞에 불안정하게 서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말이었다. 그 다음 그는 오른손을 내 이마에 댔다. 나는 살짝 미는 힘을 느꼈다. 뒤로 넘어지면서 기다리고 있던 수행원들의 팔에 안겼다. 그때 믿음 충만한 청중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낫지 않았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고,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치유에 대한 나의 믿음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던 걸까?’, ‘신앙 치유자가 사기꾼이었나?’, ‘하나님은 진짜로 계실까?’

저녁 집회가 끝날 때까지, 나는 혼자 멀리 떨어져 앉아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계속 노력했다. 그러다 “주님”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제가 정말 치유되었다면 제가 알게 해주세요.” 그때 갑자기 파도 같은 것이 내게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고, 충동도 아니었다. 잠시 동안 나는 그때까지 경험했던 그 무엇보다 더 개인적이고 깊은 사랑과 고요함과 평온함에 휩싸였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는 그곳에 있는지도 몰랐던 접이의자에 내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이 사건을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내 병이 나을 거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기다림의 날들이 몇 주, 몇 달, 몇 년으로 이어지자 나는 의심과 실망에 부딪혔고, 가끔은 처참하기도 했다. ‘내 믿음에 결함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하나님이 가짜였나?’, ‘부흥회 끝에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었을까, 아니만 마귀였을까?’

나는 이 일에 대한 쉬운 해답을 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여전히 나의 시야가 흐릿하더라도 믿으려 한다.

첫째,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중요한 장애가 낫고 있는 중이라고 믿는다. 내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과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치유를 받기 위해 예수님에게 나아갔으나, 그보다 더 깊은 필요로 인해 주목을 받았던 청년처럼, 지금 나는 육체적인 온전함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깨닫는다.

둘째, 내 장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으며, 그것은 내가 치유되었더라면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내가 특별히 영웅적인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저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본다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 좋으신 주님을 꽉 붙잡기

그들은 내 온전함이 아니라 나의 상함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나는 이 고통을 매일,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나중에 부활해서 내 약함을 궁극적으로, 완전히 극복할 때 하나님은 천 배 더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나는 내 장애를 타락한 세상에서 사는 삶의 정상적인 한 부분으로 본다. 언젠가는 내 육신을 비롯해 불완전한 모든 것들이 회복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지금 나를 치유해주실 수도 있지만,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지체됨으로 인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을”(고전 15:53) 때 훨씬 더 큰 축하행사가 열릴 것이다. 그것은 기다림만큼 가치가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 말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로마서 8장 18~21절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 이사야 55장 9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가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 고린도후서 13장 9절

† 기도
나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아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며 나아갑니다. 불신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시고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에 더욱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왜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의심이 아닌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솔직한 의심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믿음의 길을 벗어나지 않기로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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