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에게 신앙은 윤리적이고 추상적인 종교가 아니라, 경험되고 만져지는 실재였다.
그리고 이 실재가 모세의 데스티니를 이뤄가는 진짜 실체였다! 젊은 모세가 왜 자신의 능력을 의지했는지 아는가? 이 실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실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신앙의 실재(實在)가 있는가? 경험되는 실재만이 진짜다. 하나님 역시 그렇다. 경험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당신은 하나님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내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에 관한 간증이 있는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홍해를 건너본 경험이 있는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광야에서 만나를 거두어본 경험이 있는가? 보이고 경험되는 하나님, 이 신앙의 실재가 있는가?

삶 속에 ‘경험되는 하나님’이 있을 때, 그리고 그 경험이 반복될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은 내 내면의 추상적 하나님에서 벗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인식되는 ‘실체가 있는 하나님’이 된다.

모세도 처음에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혼자 하나님을 만났다. 이 개인적인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도 믿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모세의 개인적인 경험과 간증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하나님이 우박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자 정말 우박이 내렸다. 하나님이 메뚜기 떼를 보내신다고 하자 정말 메뚜기 떼가 왔다. 모세의 개인적인 간증이 한 번, 두 번 반복되자 이제 그것은 모든 사람이 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하나님의 실체로 드러나게 되었다.

세상에서 기독교가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실재다. 단순히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위로 말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의 삶 속에서 객관적으로 경험한 하나님.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안 믿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 객관적으로 실체가 있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모세에게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다. 누가 무슨 말로 반박하겠는가? 교회가 어떠니 기독교가 어떠니, 할 말이 없지 않겠는가? 구름기둥과 불기둥이라는 실체가 있으니 말이다.

2006년, 청년들 몇 명과 레바논을 방문했다.
이스라엘과의 전쟁 직후인지라 조금 긴장되기는 했지만, 우리를 맞아주기로 한 현지 교회에 무사히 도착했다. 며칠 후 현지 크리스천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 청년들은 무슬림들만 사는 트리폴리라는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십오륙 세 정도 되는 소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다. 까만 눈동자가 없이 태어난 소녀의 눈은 흰자위뿐이었다. 소녀의 부모를 만나 물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인데, 당신의 딸을 위해 기도해주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부모는 괜찮다고, 고맙다고 했다. 무슬림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 받는 것을 좋아한다! 1시간을 열심히 기도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1시간을 열심히 합심해서 기도했다.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만 정리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한 자매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제 막 예수를 믿은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다.

“분명히 하나님이 이곳에 가라고 하셨고, 그렇다면 뭔가 하실 일이 있어서일 겁니다. 뭔가 일어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집에 돌아가지 않을 태세였다. 1시간을 더 기도했다. 소녀를 붙잡고 기도한 지 3시간이 지났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녀의 흰색 눈동자 속에 까만빛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까만빛은 점점 명확해졌고 까만 눈동자가 되었다! 기적이었다. 소녀의 눈에 까만 눈동자가 생겼고 소녀는 보기 시작했다. 모두 다 놀랐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기도했던 청년들이었다. 함께 갔던 현지 크리스천들이 그 자리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무려 40명이나 되는 무슬림들이 예수께로 돌아왔다! 이날 전했던 복음의 내용은 당연히 하나님은 실재(實在)라는 것이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실재가 이슬람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6개월 후 70명이 넘는 사람이 모이게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실재다.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무슬림이라도 다 같이 보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그 실재 말이다. 초대 교회에는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실재였다! 그리고 그것이 1세기 로마제국을 뒤집어놓았던 진짜 능력이었다.

모세의 하나님은 실재하는 하나님이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에도 모세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실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물기를 기도한다. “교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소서!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보게 하소서! 그래서 모든 교회마다 예배당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예배를 시작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되어 회개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예배가 시작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임재에 압도된 채 엎드려서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역사가 있게 하소서!”

보고 싶지 않은가? 솔로몬 성전에 임했던 그 하나님의 구름 같은 영광을! 손에 만져지고 눈에 보여지는 그 영광의 구름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단순한 이론과 종교의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종교 속에 갇힌 하나님이 아니다. 그분은 살아 계신 진짜 하나님이시다.

기적만 따르는 것이 아닌
주님을 따르면 열매는 따라온다.

그분은 종이 하나님(paper God)이 아니라, 모세의 장막에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임하셨던 살아 계신 진짜 하나님이시며, 솔로몬의 성전에 구름으로 임하셨던 진짜 하나님이시며, 엘리야의 제단에 불로 임하셨던 진짜 하나님이시며, 2천 년 전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진짜 하나님이시며, 레바논 맹인 소녀의 눈동자를 만드신 진짜 하나님이시며, 장차 모든 사람의 눈앞에 구름 타고 오셔서 영원한 왕으로 통치하실 진짜 하나님이시다! 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다! 우리 하나님은 종이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신 진짜 하나님이시다!

이 땅의 교회 가운데, 만져지고 보여지는 하나님의 실재(實在)가 있기를 기도한다. 신앙의 실체를 보일 세대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이것은 꼭 초자연적인 기적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꼭 기적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진심으로 영적인 삶을 살 때, 그 영적인 것은 실체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듯 전심으로 가난한 이웃을 섬길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원수를 용서할 때, 하나님을 신뢰하여 이웃의 고통을 위해 눈물로 기도할 때,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원망하지 않을 때, 이 영적인 삶이 실체가 되어,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낸다.

당신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가? 윤리와 철학의 하나님인가? 아니면 오늘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내 인생에 개입하시고 일하시는 실재하시는 하나님인가?

모세의 삶에는 매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회막에 나가 그분을 대면하는 시간이 있었다.
회막에서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의 말씀과 임재가 모세의 삶 속에 현실이 되고, 그래서 그것이 모세의 간증이 되었을 때, 모세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객관적 실체가 나타났다. 우리도 회막으로 들어가자. 하나님을 독대하는 자리로. 그곳은 우리 인생에 정말로 필요한 자리다.

† 말씀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예레미야 29장 1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태복음 22장 37절

† 기도
저를 하나님의 자녀삼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살아 계신 주님, 저의 삶 가운데 실재로 임하시는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 찾아와주시고, 일하시는 주님과 교제하며 만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하시고 일하시기 위해서는 그분과 자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모세의 삶에 현실이 되주셨던 그 하나님을 나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과 만날 약속을 잡아보고, 그 자리에 꼭 나가는 당신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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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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