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결정해서 돌이켜야 한다. 그러려면 기다려주어야 한다.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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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이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이가 숙제 중 일부부 배껴온것 같다고… 순간 화가나고 이런 전화를 받는게 너무 부끄러워 아이를 어떻게 혼내야 할까생각하다가 아이 오기전에 마음 추스르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가 돌아온 뒤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는 눈치를 보고는 거짓말 한거 잘못했다고 먼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거짓말 뿐 아니라 도둑질이라는 마음도 주셨습니다. 물건이 아닐지라도 인터넷 상의 다른 사람의 글을 배낀것은 도둑질과 같다고… 아이는 충격을 받은것 같았고.. 차분히 아이에게 주님의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가 진짜 잘못을 깨닫고 돌이킬때까지 부모도 그 기다림이 힘든고 고통스러운걸 알았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은 그가 스스로 돌이킨 결과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여기서 ‘스스로 결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된다.

주일 예배를 3부로 나누었다.
10시에 시작하는 1부 예배 설교를 내가 맡고, 2부와 3부 예배는 전도사님들이 하도록 맡겼다.
성도 수가 많아져서 부득이하게 나눈 것이 아니라 장소가 협소해서였다. 또한 교회의 방향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각자 제자로 사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원칙, 사람을 의지하거나 함께 뭉쳐서 사람을 모으고 돈을 모아 이벤트 하듯이 사역하지 말자는 원칙이 있었다.

구역장 회의를 할 때 각자 의견을 냈는데 그 중에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런 선택의 방향이 옳은 것 같기는 하지만 우리가 선택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미안했다. 공감한다고 말하고 따뜻하게 설명했지만 여전히 미안했다. 스스로 선택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성격이 급해서 내가 간섭하고 말았다. 기다리지 못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고 하나님께 많이 죄송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_눅 15:17

모든 것이 정리되려면 스스로 돌이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와 같이 돌아가자고 했다면 그것은 아들의 결정이 아니라 아버지의 결정이 된다.

둘째 아들이 스스로 돌이켰기에 그가 처한 비극적인 상황과 아버지의 집에 있는 풍족함이 의미가 있었다.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주려 죽을 뻔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살 방법이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스스로 내린 결정은 다시는 돌이키지 않는 결정일 것이다. 주저함 없는 정확한 결정일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결정해서 돌이켜야 한다. 그러려면 기다려주어야 한다.

물론 기다리는 아버지는 고통스럽다. 기다리는 것은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이다. 사랑하니까 기다릴수록 고통스럽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다. 나는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둘째 아들은 스스로 돌이키면서 아버지의 집에는 일꾼들과 양식이 풍족함을 기억했다. 생명에 대한 경험은 소중하다. 그래서 아버지의 집은 생명을 경험하는 곳, 생명을 기억하게 하는 곳이어야 한다. 아버지는 언제나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야 한다는 영혼을 향한 마음, 즉 생명에 뜻이 있었다.

그러나 작은아들과 큰아들은 둘 다 돈에 마음이 있었다. 둘째가 돈을 탕진했는데 왜 잔치를 벌이냐며 불평하던 큰아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돈에 대한 마음은 생명의 정반대편에 있는지도 모른다. 왜 다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모르겠다. 생명에 비견할 수 있는 혹은 생명과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돈인가? 아버지의 뜻은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집은 생명이 풍성하여 사람을 살리는 집이다.

둘째는 아버지 집에 돌아가서 자녀가 아니라 일꾼 중 한 명이 된다 할지라도 그 생명에 자신을 의지하겠다고 결정했다. 둘째는 아버지가 주시는 생명을 기억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돌아왔다. 그래서 자녀가 아니라 일꾼이 되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준비한 것은 잔치였다.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겼다.

그는 아들로 완벽하게 인정을 받았다. 잔치는 모든 것이 완전하게 용서되는 분위기이다. 잔치를 벌이고 나서 갑자기 얼굴을 바꿔서 지난날을 따지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신발도 신겨주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들로서 신분의 회복을 의미한다. 아버지가 주신 것이다.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여 잔치를 벌였기에 잔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그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다른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둘째가 돌아와서 잔치를 벌였으면, 잔치를 벌인 아버지의 결정이 그를 향한 최종 결정이 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함께 잔치에 참여해야 한다.
<시험을 당하거든>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