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될 때, 하나님께 아뢰라(기도하라).
뇌 촬영과 뇌전도는 기도와 묵상이 뇌를 좋은 쪽으로 바꾼다는 것을 입증한다.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했던 한 연구에서, 닥터 앤드류 뉴버그(Andrew Newberg)는 기도와 영성 훈련이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여주는 것을 확인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벌 주시는 분이 아니라 선하신 분으로 생각할 때 불안이 줄어든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일깨운다. 베드로도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모든 것에 대해 기도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긴다는 말은 그분이 일하시게 한다는 뜻이다.

매튜 핸리(Matthew Henry)는 자신의 주석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그분의 섭리와 약속에 거하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리라 확신하며 매우 편안해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우리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기 어려운 까닭은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직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하찮게 생각하느냐와 관련이 있다. 욥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우리 수준으로, 우리를 위해 일하실 수 없는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이렇게 확신과 신뢰가 없을 때, 기쁨을 도둑맞는다.

걱정은 자기 노력과 하나님에 대한 의심에 기초한 삶의 자연스런 부분이다. 우리가 자기 운명의 주인일 때, 하나님이 행동하거나 이끄실 여지가 없다.

이것이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관계는 약하고 걱정에 지친 사람들에게 와서 쉼을 얻으라는 열린 초대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가 수고해 쉼을 얻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이 이미 다 해놓으셨다. 우리는 그분께 나와 염려를 맡기면 된다. 노력을 그치고 그분이 일하시게 하라.

현대 교회의 몇몇 진영이 범하는 실수가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 삶에 어려움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시련(trials)이 있으면이 아니라, 시련이 우리의 믿음을 세울 때 우리가 기뻐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좋다. 이제 우리는 제대로 도전을 받는다!

시련 중에 기뻐하라고? 야고보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 우리 믿음의 시험(testing)이 인내를 낳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직 기뻐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더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라. 걱정 뒤에 의심이 있다. 의심은 하나님이 신뢰하지 못할 분이라고 말한다. 걱정은 의심이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걱정이 우리를 망가뜨리니까요.
걱정해도 괜찮다는 거짓말에 속지마세요

걱정은 또한 마가복음 9장 23절의 능력을 폄하한다.

예수님은 아들을 고쳐달라고 청하는 아버지에게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단락에서,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그야말로 절박한 한계 상황에 직면한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하실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청한다. 이 요청에,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라고 하신 후 바로 그 말씀을 하신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러자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답한다.

예수님은 어려울 때 자신에게 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불가능이란 없다고 믿길 원하시며, 우리가 불신앙과 싸울 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면, 바로 지금 부르짖어 구하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당신의 모습 그대로 당신을 만나주실 것이다. 그분의 은혜는 넘치며, 그분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소망을 갖길 원하신다. 부활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신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

예수님은 걱정에 재갈을 물리는 방법으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힘주어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11장은 믿음이 어떻게 걱정과 싸우는지 보여준다. 마가복음 11장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당당하게 입성하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영광스런 순간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순간이 지나고 자신이 곧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아셨다.

당당한 입성은 성전에서 끝났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 그곳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신 후 열두 제자와 함께 나와 베다니로 향하셨다. 이튿날, 예수님이 시장하던 차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고 열매가 있을 것을 기대했으나 열매를 발견하지 못하셨다. 열매철도 아니었는데 예수님은 그 나무를 저주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14절).

이 이상한 순간을 예수님이 다녀오셨고 이제 가시려는 곳에 비춰보면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모이는 성전에 다녀오셨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후 성전으로 돌아가셔서 거룩한 곳을 더럽히는 자들을 몰아내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다.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이 배가 고프기 전과 후에 성전에서 마주친 열매 없는 종교 시스템을 상징했다.

사람들은 영적 양분을 공급받는 대신, 인간의 노력과 자기의지로 하나님의 호의와 구원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이용해 제자들에게 자기노력이 아니라 믿음의 역할을 가르치셨다. 자기노력은 영혼을 안정시키거나 영혼을 먹이지 못한다. 자기노력은 좌절과 공허로 끝나는 일종의 발버둥이다.

이튿날 아침,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시 성전을 떠나 전날 예수님이 저주하신 나무 곁을 지나갔다. 베드로가 그 나무를 가리키며 말라 죽었다고 외치자,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이렇게 답하셨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막 11:22,23

‘구하기’와 ‘믿기’는 우리 삶에서 어느 산이든 옮기는 비결이다.

불신앙의 산이 걱정을 버리지 못하게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이러한 믿음은 걱정이 아니라 신뢰를 낳는다.

 

 

†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요한복음14장 1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빌립보서 4장 6절

† 기도
저의 걱정 뒤에 의심이 있었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 저의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습니다. 나의 온전한 주인은 주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온전히 저를 이끌어주시고 세우소서.

† 적용과 결단
불신앙의 산이 걱정을 버리지 못하게 우리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일들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걱정이 아니라 신뢰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 당신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구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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