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들보가 있다고? 나정도면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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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야지’, ‘아침밥 먹어야지’, ‘준비물은 다 챙겼니’, ‘옷은 그게 머야?’, ‘재활용 좀 버려줘’ 하루에도 쉴새 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더 잘하라고 더 잘되기를 바라며 하는 말인데 가족들 모두 잔소리는 그만하라고.. 그럼 스스로 하면 좋은데 그렇지도 않고 결국 속만 상하게 됩니다.

잔소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하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어쩌면 내가 옳기에 나는 변화되지 않고 가족들만 변화시키려 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가족들의 변화보다 나의 들보를 먼저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리는 가정되기를 축복합니다. 

치명적인 것은, 들보는 자기 힘으로 뺄 수 없다는 것이다. 티가 우리 눈에 들어가면 바람을 ‘후’ 하고 불거나 안약을 넣거나 눈물을 흘려 뺄 수 있지만, 들보는 그렇지 않다.

나의 눈에 사물을 왜곡해서 보게 만드는 들보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그 사실을 인식한다 하더라도 내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하다. 자력으로 뺄 수 없는 들보를 빼는 능력, 바로 그것이 복음이다. 그렇다면 내 힘으로는 절대로 뺄 수 없는 들보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즘 내 마음 한편에는 이사야의 탄식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_사 6:5

여기 나오는 ‘그때’가 어느 때인가? 이는 앞에 나오는 이사야서 6장 1절의 상황을 받는 말이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_사 6:1,3

이사야 선지자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는 순간 스스로에 대해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탄식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경험해야 부끄러운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해야 내 힘으로 빼낼 수 없는 내 눈 속의 들보가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목사님들도 그런지는 몰라도 목사인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병이 있다.
집에 가서도 계속 목사 노릇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꾸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태도가 있어 잔소리가 많다. 아이들에게는 “목사 아들이 그러면 되겠니? 목사 딸인데 옷차림이 더 단정해야 될 것 같은데?”라고 하고, 심지어 아내에게도 “목사 아내로서 이것은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라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랬더니 한번은 아내가 이런 불평을 했다.
“당신은 내 남편인데, 꼭 남편 같지 않고 목사님 같다.” 그 말에 마음이 찔렸지만 이렇게 응수함으로 미안한 내 마음을 감췄다. “그러면 목사가 목사 같아야지, 스님 같으면 되겠나?” 그런데 이런 식으로 늘 집에서도 목사 노릇하며 가르치기 좋아하던 나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이사야서 6장 말씀과 같은 깨달음이 나에게 찾아오고부터이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이 말씀으로 내 안의 들보가 빠졌다.

그러자 아내와 아이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연약한 모습이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있음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6장의 은혜를 받고 내 눈의 들보가 빠지자 그들을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은 사라지고, 우리 인생은 너나없이 연약한 존재이므로 상대방을 긍휼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그들의 약점이 보이면 예전처럼 지적하기보다는 등을 토닥이는 일이 많아졌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요즘엔 아내가 이런 농담을 건넨다. “집에서 당신은 이제 대하기 어려운 목사님 같지 않고 남편 같아졌다.” 가정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이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은 지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격려로 변화된다는 사실이다. 들보 낀 남편과 들보 낀 아내가 왜곡된 눈으로 서로를 향해 “가정은 이래선 안 되고, 저래선 안 돼!”라고 아무리 지적해도 가정은 변화되지 않는다.

자녀 교육도 마찬가지다. 가정이 제대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에게 들보가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들보는 내 힘으로 뺄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우리가 이사야서 6장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내 힘으로 뺄 수 없는 들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으로 빠질 줄 믿는다. 이것을 경험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찬수 p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