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서 내쫓아버린 인간의 불경건이 얼마나 불의하고 악한 죄악들을 양산해내는지를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 1장 24절부터 언급되는 성적인 타락, 동성애 문제를 필두로 29절부터 열거되는 수많은 죄악의 양상을 보라.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롬 1:29-31)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결과 엄청나게 많은 죄악을 낳게 되었다’라고 한 줄로 기록하면 될 텐데, 바울은 왜 이렇게 길게 여러 가지 죄악을 열거하고 있을까? 그저 한 마디로 넘어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을 그 마음에서 내쫓은 인생은 전방위적으로 이런 무서운 죄악의 열매들을 맺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신학적으로는 이것을 ‘전적 타락’이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은 선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상대적으로 선해 보이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 보여도 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하나도 없다. 바로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로마서 1장인데, 죄의 결과물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던 바울이 급기야 로마서 1장의 결론을 어떻게 내리는가?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32)

바울이 내린 결론이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는 일말의 희망도 없다. 우리는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이 절망의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것이 바로 32절의 선언이다.

로마서 1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다가 문득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에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많은 사람이 〈감기〉나 〈연가시〉 같은 영화를 떠올리며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이런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는 대부분 몇 가지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첫째로 영화 초중반부까지는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는 그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아도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거나 한 번 감염되면 치사율이 거의 100퍼센트에 달하는 무서운 병인 것을 강조하는 것이 첫 번째 패턴이다. 또 하나의 패턴은 고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는데 치료할 백신이 없단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다가 점점 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영화 상영 내내 이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공통점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치고 너무 싱겁게 끝난다는 것이다. 보통 영화가 끝나기 한 10분 정도 남겨놓고 갑자기 주인공이 그 불가능하다던 백신을 발견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치료하고는 끝난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때로는 허탈할 때가 있다. 너무 맥없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앞부분에서 그렇게까지 바이러스의 독성과 잔혹성과 치사율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바이러스의 강한 독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주인공이 발견하거나 개발하게 될 백신의 위력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1장도 마찬가지다.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치명적인 죄를 열거하며 “이제 어떤 희망도 없다. 완전히 망했다. 우리는 죽었다”라고 선포한 것은 죄의 강력한 권세와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 뒤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그 복음의 백신이 강력한 죄악과 완전한 절망을 깨뜨리는 강력한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로 절망하고 있는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 같은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가? 꼭 기억하라.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복음의 백신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어떤 절망도 없다.

목자 곁의 양이 가장 안전합니다
내 힘으로 할수 없으나
주님은 변화 시키실 수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라. 복음의 백신으로 치유되고 회복된 사람들의 감격에 찬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깊은 절망에서 건져냄을 받아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내가 바로 그런 증인 중 한 사람이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괴롭고 아팠던 순간이 많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견뎌낼 힘을 얻었다. 그리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이처럼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죄의 치명적인 독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읽으며 하나님이 베푸신 무한한 은혜의 능력과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야 한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사형을 선포하는 32절 말씀이 로마서 1장의 결론 같지만, 사실은 중반부에 나와 있는 16,17절 말씀이 그 결론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17)

이것이 로마서 1장의 결론이자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이다.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분명히 절망에 빠져 “이젠 끝이야! 이젠 죽음이야”라고 절규했는데, 그런 나를 포근히 안아서 안전한 은혜의 포구로 인도해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는 것, 이것이 복음이다. 이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고 맛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 말씀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 신명기 31장 8절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 미가 7장 19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 기도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 늘 포근히 안아 주시고 함께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삶 속에서 날마다 경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적용과 결단
오늘도 당신을 안으시고 인도하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 위로 받고 평안함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기도할 때 듣는 '갓피플기도음악'은 다양한 상황과 관계가 혼재되어 있는 우리들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임재를 구하며 드린 기도음악연주입니다. 그렇게 여느 누구와도 같이 매일의 일상을 살고 있는 갓피플 동료와 가족들이 기도시간에 연주했습니다. 교회의 기도시간에 반주자가 없을때, 집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 산책하며 주님께 마음을 드릴 때 저희들의 기도연주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