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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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중세의 화려한 예배당 건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표현한 결과물이었다. 소위 ‘영광 신학’이 그 배경에 깔려 있어서 영화로운 예배당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개혁신앙은 영광 신학의 반대인 ‘십자가 신학’이다. 희생과 비움, 낮아짐으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인 것이다.

그렇기에 개혁교회에서의 예배당이란 처음부터 그렇게 중요한 신앙적 요소가 아니었다. 영광의 신학이 아니기에 교회의 웅장한 크기에 의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을 거부한다. 이러한 개혁신앙이 우리 안에 회복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있어서 그 어떤 외형적 요소들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눈에 띄어 보려고 한 번 해보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분립은 건물보다 더 소중한 교회를 세우는 일이다. 분립을하면 교회가 보다 작아지고, 교인 수가 많이 줄어들지만 그것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은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과, 교회의 외형적 크기와 하나님의 은혜는 무관하다는 개혁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한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 하나님께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말씀으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 개혁교회는 소위 만인 제사장설을 따른다. 교회를 분립하면서 어떤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새로 분립하는 교회로 가겠다는 계획에 대해 적잖은 걱정을 했다.

“목사님이 가시면 여기는 어쩌나?”, “구심점이 없어지면 이 교회는 어쩌나?”, “남아 있는 교회가 새로운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흔들리면 어쩌나?” 이런 걱정들을 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만약 성도가 담임목사 한 사람을 의지하고 그 의존도가 높아진다면 그것은 다른 차원에서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없으면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는가? 담임목사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아들이 교회를 맡아야 교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교회와 무엇이 다른가? 우리에게 개혁신앙의 고백이 있다면 담임목사의 자리나 역할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개혁신앙이 우리 안에 있다면 언제든지 자기의 자리를 내려놓고 주님이 명하시는 새로운 사역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사람에 의해 하나님께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신앙만 있다면 하나님이 좋은 사역자들을 또 보내 주신다는 믿음도 함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신앙을 이어받는 것은 교회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생각과, 예배당이나 교회의 전통 등 신앙의 외적인 것들을 의지하려는 생각과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개혁교회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요소다.

교회는 무엇에 관심이 많은가? 교회는 무엇 때문에 기뻐하고, 무엇 때문에 안타까워하는가? 커지는 것을 기뻐하고, 작아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가?

주말이면 예식장마다 결혼식이 있어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주례를하러 예식장에 가면 예식장 직원들의 부탁 때문에 스트레스를 제법 많이 받는다. 다음 결혼식이 곧 있으니 가능하면 빨리 예식을 끝내 달라는부탁이다. 어떤 예식장에서는 아주 노골적으로 주문을 하기도 한다.

예식이 길어지는 것은 주로 목사님들의 설교 때문이니 설교를 많이 줄여 달라는 주문이다. 예식장에서의 결혼식은 그렇게 시간에 맞춰 이루어진다. 신랑, 신부에게 충분한 권면을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듯 예식장에서 부부를 찍어 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마찬가지다. 교회가 커져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깊이 있게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성장했다고 좋아해야 할 시점이 아니라 반대로 안타까워해야 할 시점이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기보다는 조금 더 작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교인들끼리 서로 더 많이 알아 가고, 사랑하고, 더 많은 시간을 갖고 하나님께 집중하며, 시간적, 공간적 여유를 더 갖고 말씀으로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이 일을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

개혁교회 신앙을 따르기 위해 모든 교회가 분립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높은뜻정의교회의 예배당이 더 이상 교인들을 수용하기 힘든 상황에서 그 해결 방법으로 분립을 하려는 것뿐이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예배를 4부에서 5부로 늘려서 드릴 수도 있고, 가까운 건물에 예배 공간을 하나 더 마련해 스크린을 연결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좀 힘이 들더라도 캠퍼스 예배당을 세워 목회자가 왔다 갔다 하면서 설교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교회의 신앙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모두 또 다른 형태의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되고 만다.

교회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한다. 어떤 형태이든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가야 한다. 교인들을 더 깊이 알아 가고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부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이 일을 욕심내야 한다.

우리는 초대교회 교인들이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 당했던 순교와 종교개혁자들이 신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치렀던 희생에 비하면 희생이라고도 할 수 없는 턱없이 작은 ‘교회의 분립’이라는 불편한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불편함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믿음의 길을 갈 수만 있다면 종교개혁 500주년에 얻은 큰 열매가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우리 교회는 분립을 통해 더 성장하고 참되게 부흥할 것이라고 말이다.

내용 발췌 = 교회를 세우는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