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연극심리상담 #15] 타인을 이해할 수 없을 때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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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학교에 좀 오셔야겠어요. 00이가 친구를 때렸어요.”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든 걸 보니, 저마다 기질이 다르니 아이의 성격이나 행동이 100% 부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늘 강조했으면서도 정작 제 안에는 이끄는 방향으로 아이가 자라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저의 기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8살 된 아이는 친구를 때렸고, 하필 그때는 제가 아이의 학교에서 ‘학부모 재능기부-학교폭력예방 연극치료’를 진행하고 난 후였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자니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모두들 저를 향해 “네 자식이나 제대로 가르쳐라.”라고 하는 것 같았지요.

이어 ‘이번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툭하면 폭력을 쓰는 아이로 자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밀려들었습니다.

“엄마랑 같이 경찰서에 가자. 엄마가 너를 신고할 거야. 친구와 어머니는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지만 너의 행동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아이가 “엄마,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라며 겁을 먹고 잘못을 뉘우치리라 예상했습니다. <저라면 그럴 테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파출소를 향해 사뿐 사뿐 앞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오래 고대했던 장난감을 사러가는 것처럼 신나 보이기까지 했지요.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싶은 분노와 ‘아, 나는 이 녀석을 변화시킬 수 없겠구나.’ 라는 좌절감이 뒤섞여 들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도대체 어떤 심정이면 저렇게 가벼운 발걸음인거지?’라며 당황스러웠습니다.

몇 발자국 뒤에서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며 따라 걷자니 아이의 두려움이 전해졌습니다.

‘저 녀석, 무척이나 긴장했구나. 너무 두려워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구나.’ 제 감정을 내려놓자 아이의 작은 어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치 빠른 경찰관 아저씨께서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 다음에 또 친구를 때리면 벌을 받게 된단다.”라고 하시자, 아이가 눈물을 터트립니다. 역시나 많이 두려웠던 것이 맞네요.

제 아이는 저와는 달리 불안할수록 산만하게 굴고, 그 불안을 날려 보내기 위해 더 재미있고, 신나는 것을 찾는 타입입니다. 본인도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무섭고 두려워 그렇게나마 버티고 있었다는 걸 놓칠 뻔 했습니다. <저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테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에서 상황과 타인을 판단합니다.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자신의 기준이 견고하면 타인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러한 잣대는 가족같이 가까운 관계 안에서 더 힘을 발휘합니다.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타인에게는 대체로 관대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다 그렇지, 뭐” “자기 딴에도 한다고 하는 걸 거야.” “고치고 싶어도 못 고쳐서 그러는 것 같은데?”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내 주변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또 시작이구나.”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알겠다고 하면서 왜 바뀌지 않는 건데?”라며 관계의 균열이 생깁니다.

이 때, 잠시 거리를 둬 보세요.

타고난 기질이 다르고 살아온 경험이 다르고 저마다의 기준이 있기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내 감정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마음의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남편은, 나의 아내는, 나의 엄마는, 나의 아빠는, 나의 자녀는 나와 다른 사람입니다. 내 입맛에 딱 맞게 바꿀 수 없으며,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대로 하길 기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옳고, 상대는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든다면 기억하세요.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았지만 죄로 인하여 어느 누구도 온전하게 그 분을 닮은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가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나도 온전하지 못한 죄인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