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있다. 인간의 판단이나 심판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지를 말해주는 것 아닌가? 최근에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남이 잘못을 지적하면 비판적인 것이고, 내가 잘못을 지적하면 예리한 것입니다. 남이 온순하면 나약한 것이고, 내가 온순한 건 우아한 것입니다. 남이 잘 차려 입으면 허영심이 많은 것이고, 내가 잘 차려 입으면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입니다. 남이 자기 생각을 말하면 성질이 나쁜 것이고, 내가 내 생각을 말하면 솔직한 것입니다. 남이 큰 위험을 감수하면 무모한 것이고, 내가 위험을 감수하면 용감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하는 존재이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잘못된 선입견과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역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세 유럽에서 일어난 ‘마녀사냥’이다.

교회가 종교재판으로 멀쩡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불에 태워 죽이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것이 마녀사냥 아닌가? 어느 자료에 보니, 마녀사냥이 대규모로 일어난 독일에서는 약 3만 명 이상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15세기 백년전쟁 말기에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도 종교재판에서 마녀로 낙인 찍혀 화형을 당해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것이 인간의 판단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이다.

안타까운 것은 ‘마녀사냥’이란 단어가 지금도 여전히 빈번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선입견으로 가득한 인간의 미숙한 판단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 아닌가?

억울한 일로 재판 중이던 한 성도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돈이 많은 사람은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유죄여도 무죄 판정을 받는 것을 보면서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할까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억울한 일을 겪은 본인의 아픔이 녹아난 말 같아서 그 얘기를 듣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그날, 그 분과 이런 내용의 대화를 나누면서 인간의 판단은 얼마나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것이 인간들이 행하는 판단과 재판의 불공정한 모습인데, 로마서 2장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다르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의 연약한 판단을 부각하면서, 이와 달리 하나님의 심판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판단으로 행하시는 심판이란 사실을 길게 피력하고 있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롬 2:9-11

하나님은 인간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미숙하게 판단하시는 분이 아니라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란 것이다. 그리고 16절을 보면 공정하신 하나님 심판의 또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롬 2:16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심판이란 것이다. 목회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대하다 보니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속기도 많이 속고, 사기도 많이 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보이스피싱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만 당하는 줄 알았지 제가 당할 줄은 몰랐어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 말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이다. 그러니 인간의 판단에 얼마나 많은 오류가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것까지 다 보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은밀함까지 보시는 심판이란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다.

사람은 끝없이 살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대답할 날이 온다

– 패션오브크라이스트, 짐 카비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다 공정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점이다. 우리 삶의 종착지가 어디인가? 지하철을 탈 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간혹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탈 때가 있다. 내가 처음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었다. 또 서울에 다시 돌아왔을 때도 여러 번 그런 실수를 했다. 그래서 요즘도 지하철을 탈 때면 종착지와 방향을 꼭 확인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종착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과정의 혼란은 있을지언정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당신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어디인지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찬양이 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 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주시리

우리 인생의 종착지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어떤 과정의 삶을 살았든, 어떤 길을 걸어갔든 하나님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는 예수 그리스도 앞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주하게 될 그때, 심판자 되시는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종착지를 알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분은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분이다. 또 그분은 우리의 은밀한 것까지 보시는 분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주님과 대면하고 직면하여 그분의 심판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누구를 의식하며 살아야겠는가?

목회를 하는 입장에서 사람만을 의식하며 목회하면 이상하게 변한다. 그래서 내가 거듭 되뇌고 되뇌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자 애쓰는 말씀이 이것이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내 인생의 종착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고 또 그 앞에서 그분의 심판을 겪게 된다면,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그분 앞에서 그분의 기준대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우리가 다 이 원칙을 선명히 알게 되기를 바란다.

† 말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 에베소서 5장 3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 야고보서 4장 8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히브리서 9장 27절

† 기도
사람을 의식하면서 신앙생활 하지 않게 하시고 은밀한 중에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바라보고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테마와 함께 보면 더 좋은 은혜로운 묵상카툰 갓피플만화가 개편되었고

기독교 청소년 웹툰 《TOUCH(터치)》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제목 TOUCH(터치)는 “인생 속에서 겪게 되는 여러 문제들로 힘들어 지치고 어려울 때, 나를 만져 주시고 내 마음을 치유하시는 분은 결국 하나님이시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기독교 웹툰 바로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