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쓴 채 은혜 받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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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어릴 때 혼내다보면 아이의 얼굴에는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엄마의 훈계속에서 아이는 억울해 하기도 미안해 하기도 때로는 반항하고픈  표정도 다 드러납니다. 하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아이는 자기의 표정을 컨트롤 해갑니다. 성숙한 것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진실함으로 부모와 대하길 원합니다. 진짜 마음으로 나아올 때 그 관계의 진실함이 생기기때문입니다. 주님앞에 우리는 진실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주중에 간혹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성도를 만나 상담할 때가 있다.
우리 교회 각 교구의 담당 교역자들이 워낙 성도들을 잘 돌보고 있기 때문에, 담임목사인 나한테까지 상담 요청이 왔다는 것은 그 사안이 굉장히 심각하고 시급한 일인 경우가 많다. 사안이 무겁다 보니 때로 심각한 문제를 가진 성도를 만나 긴 시간 상담하고 나면 탈진할 것처럼 힘들 때가 있다. 때로는 이런 일상이 버겁고 힘들 때가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도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힘든 일이면서도 나에게 가장 활력을 주는 일이 상담이다. 내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진지한 문제에 대해 상담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 아닌가? 그리고 간단한 답을 드렸는데도 회복이 일어나고 특히 가정이 회복되는 일을 경험하면 그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 없다.

얼마 전에도 기쁜 일이 있었다.
어느 성도에게서 긴급한 상담 요청 메일이 왔는데, 아들이 지금 심각한 상황이니 급히 만나주셨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아들이 우울증으로 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인데,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심각했다.
급기야 ‘올해까지만 살고 연말에 자살해야지’라고 결심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힘든 상태에서 우연히 어느 무당을 알게 되었는데, 그 무당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살풀이굿을 해야 한다는 말에 아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굿을 하기로 하고 거액의 계약금까지 선불로 주고 왔다는 것이다.

예수 믿는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대하지 않았겠는가? 그러자 아들은 “계속 이렇게 굿을 반대하면 연말에 죽으려던 것 그냥 지금 죽겠다”라고 했단다. 그러니 그 어머니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급한 일인가?
내 입장에서도 이런 상담 요청이 들어오면 초긴장 상태이다. 그래서 그날 오후 일정을 모두 뒤로 미루고 그 아들을 급히 만났다. 만나보니 얼굴이 참 선량해 보였다.

그 형제를 붙잡고 왜 굿을 하면 안 되는지 설명하면서 설득했다.
“대부분의 무당은 다 가짜이고 간혹 진짜가 있는데, 그 무당이 가짜라도 문제가 있고 진짜여도 문제다. 가짜 무당이면 큰돈을 날리는 것이니 억울한 일이고, 진짜라면 악신을 이용하여 너를 옭아매려는 것이니 더 큰 문제다. 그러니 굿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정말 신신당부를 했다. 보통 자기가 마음에 굳게 결심한 일을 옆에서 반대하면 귀찮아서라도 대충 “네, 네” 하면서 건성으로 대답하고 넘어갈 텐데, 심성이 반듯하고 정직했던 그 형제는 끝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결국 한 시간 반을 설득한 끝에 굿을 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얻어냈다. 그는 그렇게 대답한 이후에는 철저하게 약속을 지켰다. 무당에게 주었던 돈을 환불받고, 의사 선생님을 찾아 진료도 받고, 처방 받은 약도 잘 먹고 있다고 한다.

그 형제가 귀한 것이, 그는 가면을 쓰고 나를 대하지 않았다. 그런 형제의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 이런 확신이 오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께서는 가면 쓰지 않고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는 이런 모습을 귀하게 보신다.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반드시 고쳐주신다.’

이 형제 외에도 가끔씩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중에 마음의 우울함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려고 한강까지 찾아간 학생이 있다. 죽으러 한강으로 갔는데 강 아래 있던 경비정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이후에 나와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상담한 적이 있는데, 그 학생 역시 너무나 진지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나를 대했다. 그 학생은 지금 회복되어 학교 생활을 너무나 잘하고 있다.

가끔씩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이 오는데, 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왜 치유가 잘 되는지 아는가? 가면을 쓰고 다가오지 않아서 그렇다.

자기는 어떻게든 굿을 할 것이지만 목사가 자꾸 귀찮게 하니까 가면을 쓴 채 대충 “네, 안 할게요”라고 건성으로 대답해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절대로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했던 그 형제를 귀하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하나님 앞에서 가면을 벗어야 한다. 우리 안에 오래도록 방치된 위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죄들, 하나님 앞에서 거리끼는 그 무엇을 가면으로 가린 채 그대로 둔다면 은혜란 없다. 가면을 벗고 직면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_요한복음 8:36

이 간단한 진리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한다. 당신은 무엇에 묶여 있는가? 그 묶인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자유를 누리고 싶은가? 가면을 벗어야 한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마다, 로마서 2장에서 지적 받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임을 시인해야 한다.
유대인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책망이 사실은 나를 향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맞다! 나는 실천 없는 삶을 살았어. 입으로 떠들기만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어. 방치된 위선이 내 안에 있다. 너무 오래 가면을 쓰고 교회를 들락날락거리고 있었구나! 주님, 저를 용서하소서! 가면을 벗기 원합니다.’, 이러한 회개가 일어나지 않고는 회복은 없다. 영적인 은혜는 없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본문의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실천 없는 삶’과 ‘방치된 위선’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원하신다. 돌아보고 회개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아픈 마음으로 되물어야 한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목사라고 하는 네가! 집사라고 하는 네가! 성도라고 하는 네가!” 우리의 가면을 벗기고 직면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신다. 그 주님 앞에 나아가 놀라운 은혜를 누리기를 바란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_로마서 2:25-29
<아는것보다 사는것이 중요한다>이찬수 p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