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눈을 아는가?
태풍은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며 초토화시키지만 정작 태풍의 눈 속은 적막이 흐른다. 가인의 세대가 요동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요동 없이 원래 계획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유유히 행하고 계셨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난리가 난 세상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볼 수 없는 대안을 세상에 풀어낼 수 있다. 시대를 분별하는 것은 세상의 흐름과 유행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는 것이다. 그럴 때 구조와 시스템이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한 수가 나온다.

가인의 세대 한복판에 하나님의 대안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아벨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새 생명을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셨다. 그가 바로 셋이다. 그 이름의 의미는 “채워 넣다”, “빈자리를 채우다”이다.

셋이 태어나서 105세에 에노스를 낳을 때까지 살면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겠는가?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동산에서 쫓겨난 사건과 자기보다 앞서 태어난 두 형제 이야기,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하나님을 떠나 나가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철이 들 무렵 셋은 자신의 집안이 전문 용어로 콩가루 집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셋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는데 히브리어 ‘아나쉬’로 “형편없는”, “깨지기 쉬운”, “부서지기 쉬운”이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봐도 인간에게는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달은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아서 자녀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그의 후손들을 통해 유일한 대안 되신 여호와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창  4:26

가인과 그 후손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발버둥치며 죄악으로 치달을 때 셋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가인의 세대가 자신들의 힘으로 뺏고 뺏기는 가운데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쟁취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 한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의 대안은 이런 가인을 힘으로 누를 수 있는 더 강한 가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세대를 일으키는 것이다.

성경이 왜 에노스를 이 부분에서 언급했다고 보는가? 가인의 세대를 멸하기 위한 더 강력한 하나님의 집단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찾으셨다. 안타깝게도 믿는 자들 가운데 더 강력한 가인을 만들어서 가인의 세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여전히 있지만 성경의 접근은 오히려 그 반대다.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며 “여호와여, 도와주세요. 주님만이 우리의 대안이십니다”라고 부르짖는 자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닫힌 하늘을 열어낼 수 있는 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가인의 땅에 풀어낼 수 있는 자가 필요하다.

만약 가인의 세대 가운데 더 강한 가인이 되고자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우리는 가인보다 더 큰 괴물이 될 것이다. 2천 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로마 가톨릭교회와 십자군 운동처럼 종교라는 탈을 쓴 채 교권(敎權)을 의지하여 강력한 부와 힘을 행사한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노여워하며 이렇게 말하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는 허구한 날 맞고, 당하고, 약하고, 부족해서 매일 울며 도와달라고 매달리며 힘없이 존재해야 합니까?”

어쩌면…. 당혹스러운가? 핵심은 가인이 추구하는 힘과 권력을 함께 추구하면서 가인을 이기겠다는 것은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치가나 사회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결과는 결국 더 폭력적이고 나쁜 힘과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죄의 힘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반대 정신으로 나가야 한다. 

목표 설정 자체가 높은 자리, 힘과 권력의 자리, 인정받는 최고의 자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낮은 자리, 섬기는 자리, 희생하고 양보하는 삶의 가치를 따라야 한다. 그럴 때 주님은 때때로 필요하다면 그렇게 낮아지고 희생하며 섬기고자 하는 자들을 높은 자리에 올리신다. 왜냐하면 이미 낮아지고 희생하며 섬기고자 하는 자들은 권력과 힘을 발휘하는 자리에 있어도 안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애당초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적이 힘이나 권력과 상관없이 섬기고 나누고 베풀고 양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노력해서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갔는가? 아니면 뜻을 정하여 여호와를 온전히 섬기며 진리를 따라 살아내고자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그 자리에 올리셨는가?

실력 없고 전문적인 능력도 없는 못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며 추구하는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가르쳐주시고 삶을 통해 보여주신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렇게 하기 위해 먼저 실력으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곳을 바라보며 실력을 추구하고 있는가? 높은 자리에 있는 나쁜 놈들을 이기려면 높은 자리,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먼저 올라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이미 글렀다고 말하는 것이다.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괴물을 만드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반대 정신,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반대로 할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생각 자체를 뒤엎으셨다. 산상수훈은 영적으로 너무 심오해서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서 살아내는 것이 어려운 말씀이다.

가인이 아니라 에노스가 대안이자 유일한 길이다. 이 에노스를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이 나오고, 에녹을 통하여 당대에 의로운 자 노아가 나온다. 그 결과,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과 새로운 시작의 사건으로 바뀌었다. 강한 가인들이 아니라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오직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정말 무식할 만큼 시키는 대로 순종한 사람을 통해 세상이 바뀐 것이다.

한 사람 노아로 인하여 인류는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다. 그래서 늘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도전하는 말이 있다.

“믿음은 숫자와 사이즈가 아니라 진짜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크고 대단한 일, 뛰어난 실력과 능력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진짜인가?” 하는 이 문제가 먼저이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 신실하게 순종하며 동행하느냐가 핵심이다.

이 순간 내 안에 다시 한번 나를 상기시키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하나님! 나는 아버지 하나님이 정말 필요합니다.”

† 말씀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고린도후서 12장 9, 10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사무엘상 15장 22절

† 기도
하나님, 가인 세대를 이기기 위해 더 강한 가인이 되어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를 납작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세상과 반대로 할 때 변화된다고 하시네요. 무식할 만큼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시네요. 하나님 말씀 앞에 신실하고 순종하며 동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뛰어난 실력과 능력을 키워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자리에까지 오르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그렇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나요? 그 전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진짜인가?” 이 문제를 먼저를 점검해봅시다. 주님은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기도할 때 듣는 '갓피플기도음악'은 다양한 상황과 관계가 혼재되어 있는 우리들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임재를 구하며 드린 기도음악연주입니다. 그렇게 여느 누구와도 같이 매일의 일상을 살고 있는 갓피플 동료와 가족들이 기도시간에 연주했습니다. 교회의 기도시간에 반주자가 없을때, 집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 산책하며 주님께 마음을 드릴 때 저희들의 기도연주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