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은 자신의 집에서 사람을 기르고 훈련하는 데만 집중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살던 그 지역의 이방 족속인 마므레와 에스골 그리고 아넬의 형제들과 동맹을 맺었다.

창세기 21장에도 처음에 아브라함을 시기하여 쫓아냈던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장관 비골도 결국 아브라함에게 나아와 동맹 맺기를 청한다. 믿는 자들만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동맹을 요청받고 함께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브라함이었다.

성경은 이 부분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할까?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부분이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믿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그 사이에서 영향력을 주고받는 데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삶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냄으로써 그들이 비록 이방인이지만 나와 동맹을 맺고 싶어 하도록 하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창 14:13

여기서 히브리 사람이라는 말의 어원은 “강을 건너온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들어온 이방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이름 자체가 주는 가나안 사람들의 텃세가 느껴지는가? 오죽하면 아내를 누이라고 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여길 만큼 두려웠겠는가? 오죽하면 자기 것이라고 우기면 빼앗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겠는가? 이삭의 때에 이르러서까지 이런 텃세에 시달렸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곳에 터를 잡고 있던 여러 사람들과 동맹을 맺었다는 것은 그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 사람과 동맹을 맺을 사람은 없다.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그냥 잘 지내자는 것이 아니다. 공동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해 서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울 만큼 깊은 차원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을 만큼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존재인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삶의 자리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유익이 되고 있는가? 간단히 말해보자. 하나님이 각자에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서 유익을 얻고 있는가? 그 유익의 결과로 나를 찾고 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지 돌아보기 바란다.

여러분은 마므레와 에스골이 성품이 좋아서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장관 비골이 대장부라서, 사람이 호탕해서, 쩨쩨하지 않아서 아브라함을 용납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두 가지를 보았다.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과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데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고 함부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이다. 우리도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영향을 주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그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는 그만큼 손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되었을지 몰라도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것을 깊이 연구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까지 아브라함이 많은 희생을 감당하고 손해를 봤을 것이 분명하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손해 보겠다는 자세와 태도, 그런 마음 자체가 부족하다. 그러면서 믿음 생활은 잘해보려고 뜨겁게 사모하고 배우고 훈련한다. 그러나 그 길을 가노라고 하면서 주차 문제로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은혜 받겠다고 먼저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이래저래 손해는 안 보려고 하면서도 사모하고 갈급해 한다. 이 엄청난 극과 극의 모습을 편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이 미련해서 우물을 내주고 다시 파고를 반복했겠는가? 그 당시 우물 하나를 파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와 물질이 들어갔는지 아는가? 이때 우물은 우리가 보통 이해하는 옹달샘 수준이 아니다. 잠깐 물만 얻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암반 지층까지 파내려가서 거대한 물 저장소를 만드는 것이다. 그토록 수고하여 확보한 것을 내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의 텃세 앞에 힘이 부족하여 빼앗긴 것도 있겠지만 결국 수많은 손해를 감수하고 내준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 사람은 함께해도 절대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 존재이며, 오히려 자신들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어 동맹을 맺으면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괜찮다. 나도 손해 볼 용의가 있다. 함께하자.”

이것이 동맹의 결과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그들은 보게 된다. 아브라함의 삶에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 창 21:22

이삭에게도 동일한 고백을 하며 찾아온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 창 26:28

 318명이 아브라함의 ‘실력’을 의미한다면 아브라함과 동맹을 맺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들을 섬긴 아브라함의 ‘성품’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조차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분명한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들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다가올 수 있게 했던 것은 손해 보며 유익을 주었던 두 사람의 마음과 태도였다.

 

이기적인 내 사랑 아닌,
주님의 마음.
주님의 사랑을 구하세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실력 있는 성도들이 부족한가? 아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실력과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도처에 있다. 그런데도 왜 이들의 영향력이 세상에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영역 안에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가?

그 통로가 되는 태도와 성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손해 보고 양보하는 자세가 우리에게 너무 부족하다.

얼마 전 사랑하는 집사님 내외분과 커피를 마시며 교제하고 있는데, 집사님에게 이상한 전화가 걸려왔다. 알고 보니 취기가 있는 사람이 후진하다가 집사님의 차를 받아놓고 왜 차를 이렇게 주차해놨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이다. 나는 너무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멍해 있는데, 그 집사님은 죄송하다고 하며 차를 빼주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안이 벙벙해 있는 동안 집사님은 거듭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하셨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한 내가 무안할 만큼, 너무 무례하고 황당한 그 사람에게 집사님은 그렇게 반응한 것이다. 결국 그 사람은 화를 내며 그냥 가버렸다. 목사인 나는 기막혀 하는데 집사님은 그냥 보내드린 것이다.

물론 불합리한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시는 분이 있는 줄 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을 건드려봐야 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바로잡겠다고 하는 자신의 마음 안에 기꺼이 손해 보고 양보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는가? 우리는 이 주님의 긍휼의 태도와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바로잡겠다고 해야 한다. 우리에게 이 중심이 없으면서 불합리한 상황만 바로잡겠다고 외친다면 결과는 늘 우격다짐이나 싸움으로 끝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 사이에서 나의 유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가? 만약 후자라면 그들이 당신과 동맹을 맺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의 삶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도 묘연해지고 만다.

† 말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창세기 39장 2,3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미가 6장 8절

† 기도
하나님,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 바로 제 마음과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전혀 손해 보려 하지 않고 나의 유익만을 구했습니다. 은혜 받으려 하는 일에도 제 자신만 챙겼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기꺼이 손해 보고 양보하면서 저의 삶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불합리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봅시다. 바로 내 마음 안에 기꺼이 손해 보고 양보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지 않은지요? 주님의 긍휼의 마음이 우리의 모습을 통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주시길 구하며, 오늘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양보하며 선을 베풀 수 있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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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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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때 듣는 '갓피플기도음악'은 다양한 상황과 관계가 혼재되어 있는 우리들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임재를 구하며 드린 기도음악연주입니다. 그렇게 여느 누구와도 같이 매일의 일상을 살고 있는 갓피플 동료와 가족들이 기도시간에 연주했습니다. 교회의 기도시간에 반주자가 없을때, 집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 산책하며 주님께 마음을 드릴 때 저희들의 기도연주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