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가 살 길이다 – 유기성 영성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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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부흥회 중에 제 안에 깊은 회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던 영적 교만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애통하면서도 감사한 것은 회개 자체가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죄짓는 것 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요 한국 교회 전체를 덮고 있는 위기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내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계 3:16) 는 믿어지지 않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 (계 3:17)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실상 너는,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알지 못한다” 이것이 두려운 말씀입니다.

다윗은 충성스런 부하의 아내와 간음하고 그 남편을 죽였음에도 한 부자가 손님 접대를 하려고 가난한 자의 작은 암 양 새끼 한 마리를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 불 같이 화를 내며 ‘그 놈을 당장 죽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우리가 지은 죄가 아니라 우리의 뻔뻔함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예배드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죄지은 사람을 볼 때, 흥분하고 비난하고 욕합니다. 얼마나 뻔뻔한 일입니까?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교회에 나와 봉사할 수 있습니다. 죄 짓고도 얼마든지 은혜롭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주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셔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를 영적으로 미혹하던 이세벨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려 하지 않았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집어 넣어 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여러 차례 가룟 유다에게 경고하셨으나 가룟 유다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회개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는 너무나 많이 들었지만 마음에 탐심이 가득하여 주님의 말씀보다 마귀의 유혹이 더 달콤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눅 16:19-31에 보면 부자가 죽어 지옥에 가서야 자신의 양심이 깨어났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전도자 챨스 피니는 전도집회 결신 기도 때, “나는 죄인입니다” 하며 일어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 “시간을 더 가지고 생각해 본 다음 결신하라”고 권했다고 했습니다. 전도집회를 인도해본 입장에서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회개는 전적으로 성령의 역사임을 확신하였던 피니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그리스도로 돌아온 회심자들이 더 많았다고 했습니다.

1984년 4월 광주통합병원에서 회심을 경험할 때, 저는 능력이 많은 목사는 아닐지 몰라도 문제가 많은 목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제가 목사이면서도 하나님과 전혀 친밀한 관계에 있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제 죄를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성령님께서만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사악한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죄를 많이 지었느냐 적게 지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양심이 깨어났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