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많은 계획을 세우지 않았어요. 우리의 첫 임무는 새로운 ‘조국’을 배우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한국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당시 데이빗(오대원, 예수전도단 설립자)은 그 방법을 파도 아래로 온몸을 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오래전에 하와이에 갔을 때 해변에서 파도 타는 사람들을 보았대요. 그들은 높은 파도도 겁내지 않고 온몸을 던져 파도를 탔지요.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데이빗도 시도해보았지만 파도 타는 방법을 모르니 금세 물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러자 한 친구가 “파도 아래로 다이빙을 해”라고 가르쳐주었대요. 그래서 몸을 낮추고 넘실거리는 파도 밑으로 몸을 던지자 신기하게도 물에 빠지지 않고 평화롭게 파도를 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데이빗은 그것이 새로운 조국, 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잠수하라’,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라’,
섬기려는 사람이 되어 밑으로 들어가라’라는 마음을 주셨거든요.

그래서 그는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누비며 한국의 생활과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그때만 해도 외국인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사람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어요. 또 영락교회에 다니며 대학생 영어 성경공부를 4년 동안 인도했고, 담임목사님이셨던 한경직 목사님과도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선교에 임한 자세를 요약하자면 끝까지 인내하되 사랑으로 인내한다”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남편은 늘 말했어요. 선교든 삶이든 ‘사랑’이 우선입니다. 왜냐면 사랑만 남기 때문이지요.”

내 사랑으로는 안됩니다.
주여.
주의 마음 주소서

 

본격적인 한국 사역의 시작은 전남 광주에서 했어요. 저희를 파송했던 남장로교 선교회가 주로 호남 지역에서 사역을 했기 때문이에요. 3년 동안은 서울에서 언어를 배우고, 그다음에 광주에서 2년간 살았어요.

데이빗은 광주에서 성경읽기운동(UBF)을 시작한 배사라 선교사님과 함께 사역했지요. 그 지역의 20개 고등학교에 고등부를 세웠고, 캠퍼스 리더들을 모아 귀납적 성경공부를 가르쳤어요. 토요일 전체 모임에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모이곤 했지요.

고등학생들이 영어와 성경을 배우러 서석동에 있는 우리 집에 일주일에 네 번씩 찾아왔어요. 그러면 신발장에 80~100켤레의 검정 운동화가 꽉 찼지요.

또 매일 오전 6시에 우리 집에서 영어 성경공부가 열렸어요. 대학교수, 고등학교 교사 등 20~30명가량이 모였지요. 전남대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던 교수들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영어를 배우려고 왔습니다.

무엇보다 광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한국인의 심성을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번은 데이빗이 공부를 가르치다 쉬는 시간에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깜짝 놀라 깨어보니 방에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피곤해서 잠이 든 선교사를 배려해서 모두 슬그머니 나간 것이었지요.

또 눈이 오는 어느 추운 겨울날, 늦잠을 잔 데이빗이 후다닥 나가서 문을 열어보니 30여 명이 눈을 맞으며 밖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더래요.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면 될 텐데, 우리가 깰까 봐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지요.

그처럼 멋진 광주 사람들이 미숙한 선교사인 우리를 오히려 양육해주었어요. 그들은 정말 정이 많았지요. 무엇보다 우리를 ‘한국 사람’이라고 칭하며 대환영을 해주어서 너무 감사했답니다. 우리를 한국 사람처럼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서울에서 살 때 사람들이 데이빗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그는 ‘전라도 광주’라고 했고, 성이 왜 오 씨냐고 물으면 지체하지 않고 ‘무등산 오씨’라고 답했어요. 농담 같은 그의 대답에는 진심이 담겨있었지요.

우리가 서울에서만 살았으면 진짜 한국을 몰랐을 거예요. 처음에는 서울에서 대학생 사역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서울을 떠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순종하는 마음으로 전라남도에 갔고, 그곳 사람들과 사랑에 빠졌어요.

그래서 첫 안식년으로 광주를 떠날 때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마음이 정말 어려웠어요. 2년밖에 살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곳 사람들도 우리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기꺼이 보내주었어요. 한국에 돌아오면 꼭 광주로 다시 오라고 하면서요.

안식년을 맞아 고국에 갔지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한국을 많이 그리워했지요. 이미 한국 사람이 다 된 것 같았어요. 따뜻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이 있는 광주 사람들 덕분에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파도 밑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보냄 받은 곳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뜻이겠지요. 선교지에서 수십 년 수고하며 많은 일을 하더라도 결국 남는 것은 사랑뿐이거든요. 그 말은 아무리 화려하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해도 사랑으로 하지 않은 것들은 결국 다 사라진다는 의미지요.

데이빗과 나는 알고 있어요. 우리가 삶으로 사랑한 것만 한국 사람들 속에 남을 거라는 사실을요. 사랑으로 인내하면 결국 삶 전체가 기쁨의 여정이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 말씀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 고린도전서 13장 1-7절

†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습니다. 어느 자리에 있던지 주님의 그 섬김과 사랑을 사람들에게 실천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삶의 모든 여정이 기쁨이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끝까지 인내하되 사랑으로 인내해야 하는 이유는 선교든 삶이든 ‘사랑’만 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 당신이 처한 그 자리에서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생각만으로 멈추지 않고 실천하는 당신을 격려합니다!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



기도할 때 듣는 '갓피플기도음악'은 다양한 상황과 관계가 혼재되어 있는 우리들 일상의 흐름 속에서 임재를 구하며 드린 기도음악연주입니다. 그렇게 여느 누구와도 같이 매일의 일상을 살고 있는 갓피플 동료와 가족들이 기도시간에 연주했습니다. 교회의 기도시간에 반주자가 없을때, 집에서 홀로 기도하실 때, 산책하며 주님께 마음을 드릴 때 저희들의 기도연주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