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볼때 일어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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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라면서 깊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멀리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유아기 때 기저귀를 또래 보다 늦게 뗄 때 걱정을 하면 초등학교에 기저귀 하고 가는 아이는 없다며 엄마는 위로해 주셨고 아이는 또래 보다 늦긴 했어도 잘 커나갔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이는 세상이라는 바람 속에 흔들리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 어렵다는 걸 깨닫게 되고 그 바람 가운데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주시는 주님만이 소망인 것을 깨닫고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쌍둥이 어린이 두 명이 피아노 학원에 등록했다.
형과 동생 모두 바이엘(피아노 기초교본) 1장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연습이 어려워질수록 형은 힘들어하는 반면, 동생은 즐거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형은 포기했고, 동생은 계속했다.

둘의 차이는 태도였다. 그것은 ‘꿈의 유무’에서 비롯되었다.

동생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고, 형은 없었다.
이 차이는 연습의 고통을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형은 연습이 주는 코앞의 고통에 집중했고, 동생은 연습의 어려움 너머 미래의 피아니스트가 된 자신을 바라봤다. ‘오늘 연습하는 바이엘 1장이 내일 나를 피아니스트로 만들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의 변화가 곧 행복이었다.

남다른 동생의 태도에 적합한 이름이 있다. ‘믿음’이다.
꿈 덕분에 얻은 넓은 시각에 믿음이 작용했고, 믿음은 작은 행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인내를 길렀다. 크리스천 생존법에서 기도와 말씀의 반복도 이와 다르지 않다. 믿음으로 멀리 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래야 작은 걸음을 지속할 수 있다.

멀리 인생의 끝을 바라보라. 죽음을 생각하라. 그리고 죽음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과거의 일이었음을 발견하라.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시작했을 때, 당신의 인생은 이미 죽고 새롭게 시작했다(롬 6:1-7).

모든 생명이 죽음을 향해 달리는 중에도 크리스천은 부활 생명으로 사는 존재이다.
동시에 죽음은 현재의 일이다. 크리스천은 매 순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 날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죄와 정욕을 못 박으며 산다(막 8:34; 고전 15:31; 갈 5:24).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미래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오늘의 일과와 같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죽음에 초연한 관점을 가진다.

끝으로, 당신에게 죽음이란 미래의 일이다.
앞서 말한 과거와 현재의 죽음이 영적인 것들이라면, 미래의 죽음은 육체적이다. 심장 박동이 멈추고 호흡이 정지하며 피가 차갑게 식는 날이 기다리고 있다.이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크리스천에게 물리적 죽음이란 특별한 의미이다. 끝이 아닌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은 인생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으며 살다 맞이한 육체적 죽음은 몸의 부활로 이어진다(롬 6:5; 고전 15:19-26).

죽음 없는 부활은 없다. 크리스천은 ‘죽은’ 사람들이며 동시에 ‘죽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부활을 경험하는 존재들이다. 피아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어린이조차 멀리 내다보며 오늘 바이엘 1장을 연습한다. 하물며 궁극적 부활과 천국 영생을 꿈꾸는 크리스천이라면?
<크리스천 생존 수업>송준기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