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훈련이 필요한가? – 유기성 영성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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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으로 예수님의 임재에 대한 눈이 뜨이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세월을 다 허송합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일을 너무나 많이 경험하고 삽니다. 그동안 보고 듣는 것에만 반응하며 살았기에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며 살았는지를 매일 기록하며 살아보자는 예수동행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저 일기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일기 쓰는 것만으로도 유익이 있지만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에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데 무슨 훈련이 필요한가 생각할 수 있지만 훈련을 받고, 받지 않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훈련받으려면 수도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는 생활 규칙이 있었는데, 매 순간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더 친밀히 주님과 교제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만든 것입니다.

규칙의 원어에는 ‘곧은 막대, 버팀목’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식물이 하늘을 향해 똑 바로 자라도록 대 주는 막대기와 같은 것입니다. 혼자 서지 못하는 식물도 버팀목을 대 주면 하늘을 향해 기어오를 수 있습니다.

예수동행일기에도 약간의 규칙을 두었는데,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의 틀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뛰어난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생각은 예수님과 동행하려는 삶을 살려는 열망을 빼앗아가는 미혹입니다.

재능만으로 위대한 운동선수나 음악가가 될 수 없듯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만으로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빈둥대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평범한 일상에서 성령께서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주님과 친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노력으로는 예수님과 친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요 선물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만 우리 또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 2:12-13)

우리는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벧후 1:5-7)

배를 띄우기 위한 바람을 만들 수 없지만 바람이 없을 때 해야 할 일은 있습니다. 언제라도 바람이 불면 배가 띄울 수 있도록 돛을 정돈하고 키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바람이 불어도 항해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의 바람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성령의 바람이 불 때를 준비하는 일은 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 새 부흥을 주시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를 위하여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바라보며 살게 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단순히 많이 달리거나 음악을 많이 연주한다고 해서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닙니다. 실력이 늘려면 잘 짜인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코치가 있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수천 번을 읊고도 진정한 기도는 단 한 번도 못할 수 있습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의미 있는 교제를 전혀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동행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일을 훈련하는 것은 경건의 모양만 가지지 않고 실제로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