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왜 내가 이걸 가지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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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정 내에 10대 아이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고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좋은 하나님만을 생각하다보니 아이는 그 상황이 너무 힘들고 원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내려놓고 주님께 솔직하게 그 마음을 내어놓고 기도하며 인내하는 시간을 통해 자기의 힘이 아닌 주님의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가장 연약할 때 나의 가장 큰 힘이 되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로서 그 시간을 지켜보는것이 쉽지 않았지만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고난을 없애 주시옵소서가 아닌 주님 고난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여 능히 헤쳐나가게 해주세요라는 기도가 부모로서의 할수 있는 최선임을 다시 깨닫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나는 동네 기독교 서점에서 노아의 방주 그림이 그려진 지우개를 하나 훔쳤다.
나는 그것을 가져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 지우개를 사달라고 졸랐으나 거절당했다.집에 돌아와 새 지우개를 꺼내 요리조리 보면서 기쁨과 수치를 동시에 느꼈다.

내가 지우개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어머니가 가만히 내 뒤에 서서 물었다. “어디서 났니?” 어머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버지에게 데려갔고 아버지는 나를 차에 태워 그 서점에 갔다.

나는 지우개를 서점 주인에게 돌려줘야 했다. 그냥 돌려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내가 물건을 훔침으로써 왜 서점 주인 및 직원들과 지우개를 만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는지, 서점 주인이 내게 꼭 얘기해줘야 한다고 했다.

나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내가 지우개를 서점 주인에게 돌려주길 거부했다고 상상해보라.
아버지가 나를 서점 안으로 끌고 들어갔는데 내가 서점 안에서 “아빠, 나한테 왜 이러세요? 도둑질이 왜 나빠요? 왜 내가 이 지우개를 가지면 안 돼요?”라고 물으며 아버지를 공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었을 것이다.
왜? 아이는 부모에게 뭐라 할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행위 자체는 허용될 수 있지만, 부모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 부모가 자녀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부모 아래 있다. 우리 자신이 자녀라는 생각은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시작한다_마 6:9.
그분이 아버지이심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자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모든 질문을 끝낸 후, 욥은 누가 주관하는지 깨우쳐야 했다. 욥기 끝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 자신의 임재를 욥에게 강하게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욥의 고난 중에 절대 부재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욥의 눈과 귀에도 더 이상 부재하지 않으셨다. 욥은 긴 질문 목록을 들고 하나님의 문을 두드렸다. 이에 답하여 하나님은 훨씬 긴 수수께끼 목록을 들고 욥의 문을 부수셨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한 것같이 욥은 하나님을 더 구했고 구한 것보다 많이 받았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오히려 욥에게 그를 변론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_욥 38:3-5.

하나님은 욥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 퍼부으셨다. 욥은 질문들에 전혀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힘없이 말했다.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_욥 40:4,5.

하나님은 질문 공세를 퍼부으셨다. 욥의 큰 소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욥은 지우개를 훔치고도 당당하게 부모에게 그게 왜 나쁘냐고 묻는 아이였다.
하나님께서 욥의 질문에 답하실 수 없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욥의 질문이 하나님의 숨겨진 것들에 비해 너무도 빈약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는 ‘왜 사람들이 고난당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시는가?’이다.

하나님의 숨은 지혜는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가 영원토록 완전히 숨겨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 우리는 우리가 겪는 고난의 목적을 알게 되고, 우리가 겪는 고통의 열매를 볼 것이다. 나의 고난 중에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지식으로 세상을 보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부재의 검은 비닐이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임재하심을 알기에 우리는 고난 중에도 전진할 수 있다.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임재하신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고난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다. 하나님을 피고석에 세우고 그분이 우리를 고난당하게 하셨다고 판결할 근거가 없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하나님을 고발하거나 하나님의 이유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죄가 많고 너무 유한하다. 우리는 늘 훔친 지우개를 손에 들고 입술로 터무니없는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일 것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고난을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맹목적으로나 무지함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갈망하는 방식으로는 부재하시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방식으로 임재하신다는 것을 확실히 앎으로써 가능하다. 그 임재가 고통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말이다.
<하나님이 멀게만 느껴질 때>데이비드 보우덴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