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티드 :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 – 김동호 크리스천 베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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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를 구주(救主)로 믿게 하시며, 죄를 멀리하게 하셔서 우리로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게 하신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사실을 함께 살펴보았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와 같은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신다. 성령의 은사에는 방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말씀의 은사, 봉사의 은사 등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들이다. 은사를 받으면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성령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일이 하나님의 영, 즉 성령으로는 가능하다.

성령의 능력은 은사를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만 한다. 성령의 은사를 소홀히 여기거나 경홀히 여기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다. 예수를 믿고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려면 반드시 성령의 은사를 받아야만 한다. 그 모든 삶이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양하나 동등한 은사들

성령은 하나이나 성령의 은사는 하나가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아주 다양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를 주신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나 서로 동등하다. 그러므로 구별은 할 수 있으나, 그것을 가지고 성도를 차별할 수는 없다. 은사는 크고 작은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좀 더 귀하고 그렇지 못한 은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가 서로 누구의 은사가 더 큰 은사인가를 놓고 다투었던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잘못된 생각에 대하여 바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主)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이니라 고전 12:4-11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다. 그러므로 다른 누군가가 받은 은사를 내가 받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동등하다. 우월한 은사가 있고 열등한 은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으면 된다. 어떤 은사이든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으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대로 그 은사를 활용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고,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려고 해야 한다.

은사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다. 괜히 인간적인 생각에 자기 은사대로 사는 삶을 비천하고 못난 것으로 오해하여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엉뚱한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도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다는 것과 그것은 서로 동등하다는 사실은 바른 신앙생활을 위하여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다.

은사라야 일이 즐겁다

은사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살면 일도 잘 안 되고 힘만 든다. 그러나 은사에 맞추어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살면 사는 것이 얼마나 쉽고 즐거운지 모른다. 성령의 능력이 그 삶과 생활에 역사하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함과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과 은사를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은사에 맞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쉽고 즐거울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다른 은사를 받았다. 그러므로 방언을 못 하지만 목회를 하는 데 별로 큰 문제가 없다. 내가 방언을 못 하기 때문에 자연히 방언에 대한 이해도 적다. 그래도 방언은 성경에 있는 은사이기 때문에 믿고 인정한다. 나는 방언의 은사가 왜 필요한지 정확히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 하나가 있다. 방언이 분명한 성령의 은사라는 것이다.

방언이 분명한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에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에게도 당연히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 믿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기도생활, 헌금생활, 봉사생활 등등 성령을 받지 않고 감당하려고 하면 다 십자가를 지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그냥 기본으로 감당한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다.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우리의 힘과 능력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백전백패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살아간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승리하였듯이 험한 세상을 이기고 능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성령은 능력이다. 성령을 받으면 우리 자신에게 없는 능력이 생겨난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성령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큰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가 흔히 쓰는 ‘영’(靈)이라는 말의 영어 단어인 ‘spirit’은 히브리어 ‘ruach’(루아흐)에서 번역된 말이다. 이 ‘루아흐’의 원래 뜻은 ‘숨’(breath), ‘바람’(wind), ‘영’(spirit)을 의미하는데, 그중 ‘바람’(wind)의 의미가 바로 능력이다.

이 바람은 태풍을 나타내는 말이다. 태풍은 배를 뒤엎고 나무를 송두리째 뽑아버린다. 바람은 불가항력적인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바람이다. 성령은 능력이다.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는 여러 방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가장 위대한 능력 가운데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욕심을 버리고 죄를 멀리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욕심이냐 의욕이냐

성경은 죄의 삯을 사망이라고 말씀한다. 모든 사망의 원인이 죄에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모든 사망의 원인이 되는 죄의 뿌리는 바로 욕심이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라고 말씀한다. 결국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욕심만 버릴 수 있다면 죄를 멀리하며 정말 아름답고 근사한 삶을 살 수 있을 터인데, 그 욕심을 버린다고 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욕심을 버리고 죄에 대하여 자유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우리로 하여금 욕심을 버리고 죄를 멀리하게 하여 성결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과 능력은 바로 성령에게 있다. 그것이 바로 위대한 성령의 능력이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욕심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죄의 뿌리가 바로 욕심이기 때문이다.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기 때문이다. 욕심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왜냐하면 좀 더 나은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 그보다 못한 가치에 대한 욕심은 자연히 없어지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100원밖에 모를 때는 100원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500원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 100원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동안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오던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살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소중히 여기던 것에 대한 욕심을 단번에 버릴 수 있었다. 좀 더 나은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달은 후 세상의 모든 자랑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 좀 더 나은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이치에서 이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은 하나님나라 것을 보게 되는 발견을 통하여 버릴 수 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깨닫고 발견한 사람은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쉽게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세상 것은 마치 배설물과 같기 때문이다. 500원에 대한 욕심 때문에 100원의 욕심을 버린다면, 그것은 욕심을 버린 것이 아니라 욕심이 더 커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것 때문에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면 그것은 정말로 욕심을 버린 것이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욕심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의욕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님나라를 보는 것이다.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나라를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세상 욕심을 버리고 세상과 죄에 대하여 자유하는 근사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는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3: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다는 말씀이다.

성령을 받으면 천국이 보인다. 천국이 보이면 세상에 대한 헛된 욕심이 사라진다. 욕심이 제어되면 죄에 대하여 자유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것은 참으로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일을 성령이 하신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위대한 능력이다.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죄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나라를 볼 수 있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하신 것이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령은 어떻게 받는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성령을 받지 않고는 신앙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아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말씀하셨으며, 승천하실 때에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라는 집단과 사회의 한 멤버십을 가진 회원은 될 수 있을는지 모르나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천은 될 수 없다. 예수를 믿는 신앙인에게 성령을 받는 것, 그리고 그 성령이 충만하여 살아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방법 두 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아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 모든 글과 그림과 음악 속에 그 작가의 감동이 들어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는 하나님의 감동이 있다. 성령의 감동이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려면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설교를 잘 들어야 한다.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은혜가 되면 그것이 바로 성령을 받은 증거이다.

그것이 가장 정확히 성령을 받는 방법이다. 말씀을 떠나 성령을 받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감동할 수 있고, 마음과 삶이 뜨거워질 수 있다. 신비하고 이상한 일들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해서 다 성령은 아니다. 악한 영에도 나름대로의 감동이 있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능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성령 받기를 힘써야 한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나 설교를 들을 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그렇게 들은 말씀을 삶에 실천하여 그 말씀의 열매를 거두며 기뻐하고 감동하며 은혜 받을 때, 우리의 삶 속에는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된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사모하라

둘째,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7장 7,8절 말씀, 곧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라는 말씀을 잘 알고 있다. 이 말씀은 모든 경우에 다 해당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이 어려울 때나 건강이 나빠졌을 때 등등 어느 때나 하나님께 구하고 매달리면 하나님은 응답해주실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매달려 구하기를 가장 크게 원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 받기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셔서 하나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을 보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말씀이 그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기 위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성령 주기를 원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구해야만 주신다. 구하지 않는 자에게 주어진 성령은 마치 개에게 던져진 거룩한 것, 돼지에게 던져진 진주와 같기 때문이다. 그 대신 누구나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주실 것이다.

나는 아직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마 나는 앞으로도 방언의 은사는 받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하나님은 나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큰아들은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큰아들이 방언의 은사를 받은 까닭은 그 아이가 그 은사를 사모했기 때문이다.

큰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교회 기도원에서 겨울 수련회가 열렸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집회에 크게 역사하셔서 그 집회에 참석한 아이 중 한 명만 제외하고 모든 아이에게 방언이 터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그때 방언을 받지 못한 아이가 바로 나의 큰아이였다. 신앙적으로 열심이 부족하여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에게 다른 은사를 주기 위하여 그러셨다고 믿는다.

그러나 큰아이는 자기만 방언의 은사를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서운했던 모양이다. 다른 친구들이 다 잠이 든 틈에 기도원 옥상으로 올라가 울고 뒹굴면서 방언을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결국 하나님은 큰아이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시고 말았다. 그렇게 떼를 쓰고 달라는데 안 주실 이유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하여 성령을 받는 것이 참으로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든지 한 바퀴만 울고 뒹굴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농담 같지만 사실이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누구에게나 성령을 주실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간절히 사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병 낫기를 위해서는 울면서 기도하고,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성령 충만함을 위해서는 별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린 일이 없기 때문에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를 포함하여 자신을 따르던 무리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즉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저들은 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이 위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여서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다가 몇 날이 못 가서 오순절 날이 되자 저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오순절이란 유월절이 지나고 50일째 되는 날이다.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 잔치를 한 후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신 것을 생각하면, 저들이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는 것은 열심히 기도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성령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은 누구나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몇 날이 못 가서 다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성령을 사모하라.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라. 성령 충만한 생활을 사모하라. 그러기 위하여 성경을 보고 말씀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령을 선물로 주실 줄로 믿는다. 성령 충만한 생활! 상상만 해도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이와 같은 삶이 가능하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감당해내는 놀라운 삶,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살아가는 그 기막힌 삶이 가능하다.


크리스천 베이직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서술한 책이다.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해도,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조직신학적인 공부가 한 번은 꼭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기둥과 뼈대를 세우지 않고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튼튼하고 반듯한 신앙생활이 어려워진다. _ 개정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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