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규 박사의 책에 나오는 한 알코올 중독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이민규, <실행이 답이다>).

빌(Bill)이라는 남자가 쓰러졌다.
술 때문이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의사가 그랬다. 알코올 중독이 심각하다고,
이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빌은 슬펐다. 한 잔 마시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다.
“선생님, 지금 정말 술 한 잔이 필요해요.”

곧 죽을 사람이라서 그런지 의사가 허락했다.
“네, 그러세요.”

빌은 반신반의했다.
“어? 정말 그래도 되나요? 병원에서요?”

“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옆 병실에 새로 입원한 환자에게 가서 당신의 이 절망적인 상태를 보여주시겠어요?”

“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당신의 끔찍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주어 옆 병실 환자가 술을 좀 끊도록 하려고요.”

빌은 의사의 조건에 동의했고 그 환자를 찾아가 왜 술을 마시면 안 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자신의 말에 스스로 감동을 받아버렸다. 이야기를 마친 빌은 자기 침대로 돌아와 술을 완전히 끊게 되었고 나중에는 유명한 금주협회를 세우게 되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잠 27:17). 빌도 그랬다. 홀로는 무뎠는데 남을 돕다 보니 자신도 날카롭게 되었다. 성장했다. 남을 설득하다 보니 자신이 설득된 셈이었다.

혼자서는 중독자일 뿐이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쳐본 후에 관점이 바뀌었다. 중독의 경험이 재조명되었다. 중독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남을 돕는 훌륭한 교보재였다. 이전에는 중독에서 벗어날 생각만 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문제가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공자의 말을 빌렸던 이민규 박사의 말을 빌리자면 빌은,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는 자와 학생이 함께 성장)했다.

빌은 결코 건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중독자를 가르칠 만큼 중독을 극복한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상황에서 어려움을 나누고 가르치다 보니 자신도 변했다.

마찬가지다. 지키는 기도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누군가를 지킬 정도로 강한 영성의 소유자만 지키는 기도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신도 연약해서 누군가의 기도를 받아야 할 경우라도 상관없다. 누군가를 지켜야 할 정도로 아끼기만 해도 가능하다. 누군가의 고통이 내 마음에 부담만 되도 된다. 그래서 시작한 기도를 통해 정작 본인도 바뀌게 된다.

기도해주다 보면 지키는 힘을 베푸시는 주님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을 갖게 된다. 스스로를 지키게 된다. 시험을 이기고 악에서 떠나는 힘이 임한다.

지키는 기도를 하는 동안 지키는 기도자로 성장한다. 단순하고 당연한 원리다. 기도해야 기도한다. 어떤 위대한 기도자도 처음에는 연약했다. 날 때부터 기도꾼이었던 사람은 없다(시 51:5).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짊어진 상황이 있었을 뿐이다. 성경의 인물들도 그랬다. 믿음의 어머니들도 그랬다. 사랑하다 보니 기도했고, 기도하다 보니 기도꾼이 되었다.

기도하는 과정 중에 더 기도해야 했던 성경 인물은 많고 많다. 그중에서도 엘리야는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 약 5:17,18

엘리야는 선지자 중의 선지자였다.
예수님의 이적 앞에서 사람들은 엘리야가 다시 나타났다고까지 생각할 정도였다(마 16:14).

그는 하늘을 열기도 닫기도 했다. 비가 안 오게도 오게도 했다.
그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도 했고, 말보다도 빨리 달렸으며, 질병이나 날씨뿐만 아니라 죽음조차도 생명으로 바꾼 인물이었다. 그 앞에서는 권력도 꼼짝 못했고 민심도 순응했다. 엘리야는 이 모든 일을 기도로 진행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돕고 싶으셔도
도우실수가 없다
– E.M. 바운즈

이렇게 대단한 선지자의 일생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건은 갈멜 산 전투다. 홀로 기도 전투를 벌여 우상숭배자들 850인을 물리치고 세상을 뒤집은 싸움이었다(왕상 18:1-40). 굉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는 그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일축한다(약 5:17). 특별할 것도 위대할 것도 없는 사람, 우리랑 같다는 것이다.

우리와 똑같이 먹고 자고 싸는 사람, 그도 우리도 죄인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는 기도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을 보라. 3년 6개월 동안 비도 이슬도 땅에 내리지 않게 만들었던 것은(다시 내리게 만들었던 것도) 엘리야의 기도 때문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의 기도대로 역사하셨다. 사람들의 눈에는 엘리야가 대단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능력의 배후이자 실체는 따로 계셨다.

우리도 주변의 기도꾼들을 대단한 신앙인처럼 볼 때가 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기도자나 기도하지 않는 자나 둘 다 평범하다. 다만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특별하실 뿐이다.

그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엘리야가 대단해 보인 이유는, 평범한 기도자에게 특별한 응답을 하신 하나님 때문이었다.


† 말씀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 요한복음 17장 12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예레미야 33장 2, 3절

† 기도
하나님, 기도 퐁당퐁당 하면서 시험에 빠져 마음 하나 제대로 지킬 수 없다면 누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내가 먼저 기도하며 깨어 있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기도함으로 끌어 쓰는 기도꾼이 되게 하소서. 엘리야처럼 특별한 응답을 하신 하나님을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도꾼으로 세우소서.

적용과 결단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고전 4:20).
기도로 그 능력을 끌어다 쓰십시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위해 기도로 하늘의 열매를 구하십시다.

 


▷함께 해주시면 개척교회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