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의심이라는 것은 신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곧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먼저 의심을 해봐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의심의 정당성은 충분합니다. 특히 넘쳐나는 이단들 때문에 믿음 생활에서도 의심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즉 균형이 깨지면, 하나님의 음성 자체에 대한 의심으로도 번지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시지 않아.’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이 나에게 들릴 수 있지?’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의심은 결국 불신을 불러오게 되고, 음성이 들리는 통로를 막아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불러 예수께 데려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과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이라는 동네의 예수라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차갑게 반응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이 가지고 있던 상식으로 볼 때 나사렛이란 동네에서는 절대 메시아, 구원자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때 빌립이 요청합니다. “와서 보라”(Come and see).
나다나엘은 속는 셈치고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 요 1:47-49

의심은 해소시켜주면 확신이 되거든.” 〈꾼〉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인데, 극중 사기꾼들의 입에서 회자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신앙에 적용한다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는 전혀 메시아, 선지자가 나올 수 없다는 확신으로 가득 찬 나다나엘의 의심을 풀어주십니다. 그의 신앙, 영적인 상태까지도 모두 알고 계셨던 주님은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나다나엘의 내면을 꿰뚫어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던 선지자의 모습을 나다나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나다나엘의 의심을 풀어주시자, 그는 가지고 있던 모든 경계를 풀고 확신 가운데 예수님을 신뢰하게 됩니다.

‘의심’이라는 프레임이 이 시대에 필요한 부분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의심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의심이라는 프레임을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곧 의심할 것과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의심해야 할 것을 의심하지 않은 대표적인 인물로 아담의 아내, 하와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와는 뱀의 말을 의심했어야 합니다. 하와가 의심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그 마음을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의심을 다루지 못한 것입니다(창 3:1-6).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뱀에게 먹어도 죽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란 소리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미 알고 있던 하와였지만, 아무 의심도 없이 뱀의 말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 열매를 보니 정말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그날 처음 보았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수없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때는 그 열매가 먹으면 죽는, 죽음의 열매였습니다.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뱀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맛있어 보이는, 정말 무언가 그럴싸해 보이는 열매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심해야 할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되는 순간, 우리의 내면에 일어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와가 흔들릴 때,
하나님께 나아갔다면
결론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반대로,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 우리의 내면에 일어나는 소용돌이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의심하는 순간 늘 듣던 음성이 들리지 않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의심은 결국 불신으로 이어지며, 그것은 그분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뼈아픈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의심의 구름은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거두어야 합니다.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의심의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대피시켜야 합니다. 그런 소리로부터 우리의 귀를 닫고 스스로를 지켜야 합니다.

† 말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 이사야 43장 10, 11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야고보서 1장 6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 로마서 4장 20절

† 기도
하나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안에 의심이 일어납니다. 나에게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나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이 의심을 거두게 하소서. 이 불신을 거두게 하소서. 의심의 환경을 차단하며 주님의 품으로 대피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의심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의심의 구름을 의지를 가지고 거둡시다. 의심의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며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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