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가 기도를 지속했던 장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까마귀에게 얻어먹은 건 그렇다 쳐도 과부네 집은 진짜 뭔가? 체면은 떨어지겠지만 까마귀 걱정은 별로 할 것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가뭄 중에 먹을 걸 날라주다가 굶어 죽더라도 큰 부담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과부네 집은? 아, 마음이 어렵다. 왜 그를 돕도록 인도하신 곳이 오바댜 같은 능력 있고 가진 것 많은 사람이 아니라 고작 과부네 집(왕상 18:3-5)인가?’

그러고 보니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교회 개척을 시작할 때였다. 교회론과 개척 비전을 준비하며 기도했다. 사역 중 필요한 금액, 특히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후원자 모집에 들어갔다. 교회론과 개척 비전을 프레젠테이션하며 소개하고 후원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다 연세가 지긋한 권사님에게 답이 왔다. 매월 3만 원씩 2년 동안 후원하고 싶어 하셨다. 마음이 너무 어려워 처음에는 거절했다. 독거노인이셨기 때문이다. 몸도 편찮으신데 매일 폐지를 주워 팔아 생활비에 보태셨다. 한 달 내 내 일해서 버는 돈이 3만 원쯤 되었다.

그런데 그 전부를 내게 보내고 싶어 하셨다. 고민이 되었다. 계좌를 알려드리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일단 받지 않고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기도하러 갔다. 나는 하나님께 하소연했다. 눈물로 목이 멨다. 컥컥대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어떻게 이 3만 원을 받겠습니까?
당신은 창조주가 아니십니까? 세상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이지 않습니까? 꼭 이렇게 하셔야 합니까? 그냥 당신의 소유물 중 극히 일부만 제게 덜컹 떨어뜨려 주셔도 저는 후원 모집을 안 해도 되었을 텐데요. 독거노인 분에게까지 생활비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분이시니, 다른 방법으로 주시면 안 됩니까? 세상에는 그 권사님보다 잘사시는 분이 많고도 많지 않나요? 제가 도와드려야 할 분 같은데, 왜 제가 이렇게 받아야 합니까? 3만 원이면 커피 몇 잔 사 먹으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분에게는 정말 큰돈입니다. 주님, 정말 제게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기도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은혜를 받아서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고 원통해서 그랬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지속하며 기도하는데 마음속에 감동이 일었다. 꼭 성령님의 음성 같았다.

‘준기야, 그 3만 원도, 그 딸도 둘 다 내 소유란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 말과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기도하다 깨달았다.
내가 주저 없이 권사님의 3만 원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는 알고 보니 악하기 그지없었다.

권사님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피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소유였다. 그리고 후원금이 필요했던 원인인 개척 사역도 교회도 하나님의 것이었다. 모두 하나님의 것이었다.

3만 원은 내 것이 아니었다. 후원자를 모집하는 이유인 사역도 내 것이 아니고, 세우게 될 교회도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꾸만 내 것이라는 착각이 있었다. 그 권사님의 헌신도 나를 위한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기도하기 전에는 내 안에 이중적인 생각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기도하자 깨달았다.

나는 분명히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이것이 내 일입니까? 당신의 일 아닙니까?’

그러나 기도하니 그 말의 이면에 숨어있는 어두운 생각이 보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는 교회 개척이 내 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니 후원도 내 것인 줄 착각이 되었고, 헌금하시는 분도 내게 하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였다. 3만 원도, 폐지 주워 사시는 할머니도, 나도, 개척 사역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는데 내가 중간에 끼어들어 모두 내 것처럼 생각했다니 슬프고 부끄러웠다. 내가 중간에서 그동안 마음으로 가로챈 다른 헌금은 없는지 되뇌며 회개했다.

하나님이 맡기신 교회를 내 것이라 생각했던 교만도 회개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그보다 큰 것으로 과부에게 갚으실 것이었다. 내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문제였다.

기도를 마친 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3만 원을 받았다. 다른 길이 없었다. 권사님이 하나님께 드리는 3만 원이었고,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시는 3만 원이었다.

그 중간에서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하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납작 엎드렸다. 개척 사역을 준비하는 내내 할 말이 없었다.

누가 10만 원을 보내든 100만 원을 보내든, 계속 그 3만 원이 생각나서 울었다. 기도하다 울고, 커피 사 마시다 울었다. 사역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이 다 그 3만 원으로 보였다. 1만 원도 1천 원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기도하며 사용하는 법을 나는 거기서 배웠다.

참! 발견한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이것도 기도하며 깨달은 내용이다. 부끄럽게도 나는 거만한 판단을 했다. 그 권사님은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자체는 구제의 관점에서 옳을지 몰라도, 헌금 행위 앞에서는 잘못된 것이었다.

내가 누구길래 헌금 행위를 감히 막아서겠는가? 전부를 드리는 헌신자를 “축복하소서”라고 하기보다 “불쌍하다”라고 판단하는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주님은 그 희생을,
그 사랑을 받아주셨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헌금을 보내던 2년간 계속 질문하셨다. 정말 내가 주님의 종인지 아니면 내 일을 하는데 주님을 이용하는 인간인지 시험하시는 것만 같았다.

매달 3만 원을 받을 때마다 내 위치를 재확인했다. 나는 독거노인 권사님이 보내주시는 3만 원보다 아래에 있어야 하는 존재다. 작은 자다. 섬기는 자다. 헌금을 받는 사람이다. 개척자다. 목사다. 사역자다.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사람이다.

다시 엘리야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는 까마귀에게 얻어먹고 과부에게 빌붙어 살았다. 그의 마음을 상상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엿보인다. 하나님은 기도자에게 기도를 지속할 수 있는 낮은 곳을 허락하신다. 그러한 인도하심에는 거룩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연단이다. 기도를 지속해야 인내가 생기고 믿음이 강해진다.

그분은 당신에게도 같은 일을 하실 것이다. 과부의 전부를 요구했던 엘리야를 보라(왕상 17:13). 이미 까마귀보다 아래 있었던 엘리야가 이번에는 과부에게 얻어먹음으로써 자신을 더 낮추었다. 그는 스스로를 과부보다 높이는 일을 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전부를 요구할 수 있었다.

기도꾼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인다. 그는 과부네 집에 가서 얻어먹고 살았던 게 아니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선지자였다(왕상 17:9). 거기서 하나님은 3년 6개월간 그를 계속 기도시키셨다. 순종한 엘리야는 낮은 자리에서 거룩한 연단을 받을 수 있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이 책임지셨다. 그녀는 기적을 경험하며 축복을 받았다(왕상 17:14-16). 이 축복은 엘리야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 때문이었다. 과부네 집에서 하나님의 소유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서 기도꾼은 연단을 받았다.

우리에게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지키는 기도꾼은 기도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낮은 자리로 가게 된다. 그는 기도를 지속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연단 훈련 프로그램 안에 있다.

† 말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 시편 73장 28절

낮은 자를 높이 드시고
애곡하는 자를 일으키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느니라
– 욥기 5장 11절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 시편 138편 6, 7절

† 기도
하나님, 낮은 자가 섬기는 자가 되어 기도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기도를 지속할 수 있는 낮은 곳을 허락하소서.
기도를 통해 인내를 배우며 강한 믿음을 소유하게 하소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진정한 기도꾼이 되게 하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지키는 기도를 하다 보면 가장 낮은 곳으로 안내 받아, 기약 없이 지속되는 기도 훈련에 들어갑니다. 그곳은 외롭고 홀로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거기서 기도꾼으로 연단받습니다.

그러나 지키는 기도를 멈추면 안 됩니다. 계속 훈련받아야 합니다. 그때 승리가 가깝습니다. 시험 준비를 시험 전에 해야 하듯, 믿음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매 순간 기도하며 믿음의 수준을 높이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 "오늘의테마" 내 폰에서 받아보고 싶다면...👈
🎬 테마와 함께 보면 신앙에 유익한 영상

📱 스마트폰에서 성경 읽을 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