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로 헌신하고 선교지 현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훈련과 과정들이 필요하다.
함께 사역할 선교단체도 구해야 하고, 파송 교회 및 기도와 재정의 후원자도 찾아야 하는 등 준비할 일이 많다.

선교지가 정해지면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은 ‘선교사 명(名)’ 혹은 ‘예명’(필드에서 사용할 가명)을 짓게 되는데, 나의 경우는 ‘요나’(Jonah)이다.

물론 처음부터 요나는 아니었다.
누구나 처음에는 아름답고 멋진 ‘선교사 명’을 가지고 싶어 한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사무엘,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 에스겔, 요한, 베드로, 바울 등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위대한 주의 나라를 선포한 사람들의 이름을 인용하며 선교사 명으로 쓰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야곱’이나 ‘요나’를 선교사 명으로 쓰는 분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모르긴 해도 야곱은 ‘발꿈치를 잡다’라는 뜻이고, 그의 인생이 ‘험한 세월’로 대표되다 보니 ‘야곱’이라는 선교사 명을 피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요나 또한 이름 자체는 ‘비둘기’라는 좋은 의미지만, 그의 인생을 보면 한마디로 ‘불순종의 아이콘’이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요나 선교사’라는 이름을 가진 분은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처음에 주를 믿고 헌신한 뒤에는 ‘바울’이라고 지었다. 바울이 쓴 바울 서신을 보며 그의 헌신과 복음에 대한 열정을 너무 닮고 싶었기 때문이었지만, 신앙생활을 하고 훈련을 받으면서 그 이름을 차용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한 이름은 ‘요셉’이었다. 정말 ‘주님이 늘 함께하심으로 형통한 자’의 아이콘인 요셉처럼 살고 싶었다. 그러나 창세기를 묵상하면서 ‘요셉’이라는 이름 또한 차용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교지가 정해지고 난 뒤에 주 앞에 깊이 머물며 선교사 명을 구하고 찾게 되었다. 그런데 나의 인격과 삶과 사역에 가장 알맞은 이름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에 받은 이름이 바로 ‘요나’ 였다.

‘많고 많은 성경 인물 중에 왜 하필 요나일까?’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나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는 분들을 보면 마치 무언의 메시지를 나에게 던지시는 것 같았다.

‘요나처럼 말 되게 안 들었나 보다!’
‘요나처럼 고집이 엄청 센 분인가 봐.’

요나처럼 순종 않고 곁길 갔던 나의 모습
야곱처럼 간사하여 주님 말씀 배반해도
우리 주님 사랑으로 오래도록 참으시고
주님 예수 십자가로 죄인 구원하시었네
– 찬송가 281장 <요나처럼 순종 않고>

“요나처럼 순종 않고”라는 찬송가에 등장할 정도로 ‘요나’는 ‘불순종의 아이콘’이다. ‘요나’라는 선교사 명을 가지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지만, 정작 중요한 주님의 가르침은 다른 데 있었다.

불순종의 대명사가 ‘요나’가 아니라 사실 ‘나 자신’은 아닌지!
“요 – 나(요)!”

곁길로 가기 원해서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사람은 ‘요나’가 아니라 ‘나 자신’은 아닌지!
“요 – 나(요)!”

주께 굴복하게 하소서!

우리 모두 ‘요나 신드롬’(Jonah Syndrome)을 가지고 있다. 다만 드러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나는 늘 기억하려고 한다. 나 같은 죄인 살려서 선교사로 불러주신 주님, 선지자 요나를 어르고 달래서 그의 원수인 나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보내어 단 한 사람이라도 건져내고픈 아버지의 애끓는 마음이 ‘요나’라는 이름에 담겨 있다(욘 4:1-11).

그래서 나는 나의 선교사 명인 ‘요나’라는 이름을 정말 사랑한다.
이 이름 속에는 아버지의 눈물과 인내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말한다(욘 4:1).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욘 4:3).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 4:4)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욘 4:9).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욘 4:9)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욘 4: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

“……”(욘 4:12).

요나서 4장 12절은 성경에 없다!
왜냐하면 요나가 대답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 말씀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디모데전서 1장 15절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 사도행전 3장 19절

† 기도
하나님, 제 안에는 마음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행동과 말로 나올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저의 행동과 이기적인 모습이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곁길로 가고자 하는 저의 모습을 붙잡아 주소서. 한 사람이라도 살려내고자 하셨던 그 주님의 눈물과 인내를 알며 품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불순종의 대명사는 ‘요나’가 아니라 사실은 ‘나 자신’ 아닐까요? 곁길로 가기 원해서 내 마음대로 살고 싶었던 사람은 ‘요나’가 아니라 ‘나 자신’ 아닐까요? 당신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눈물과 인내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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