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교회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라.”

맞다.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영향력을 가진 크리스천의 기준이 때때로 너무 세속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예수님의 가치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이 높은 자리에서 나오는 것인가? 세상 성공에서 나오는가?

하나님나라의 가치로 영향력을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잘나서 성공한 무용담을 통해 흘러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잘나고 멋진 우리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좀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갈 때 세상 가치로 살던 사람들에게 잔잔한 충격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 노력이 잘못되었거나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분명히 주님이 맡겨주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피땀 흘려 충성스럽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영향력이 겸손과 섬김과 낮아짐에서 비롯되는 것이 맞는가? 교회 안에서조차 실패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힌 이들이 많은 이유는 외모, 능력, 재력 등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 아닌가.

만약 교회에서조차 이러한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한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그런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시는데 말이다.

‘교회에서도 이런 기준으로 평가하는구나’, ‘하나님도 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시지’, ‘능력 좋은 사람을 쓰시지’, ‘나 같은 사람이 무슨 주의 일을 해’,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어.’

이런 생각들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의 능력 있는 모습과 성과 있는 사역을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말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힘들면 힘들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진실하게 겸손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기도였어.

하나님은 능력 있고 사역을 잘하는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저 나의 존재 자체를 기뻐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나도 그렇게 하나님을 오해했다. 어릴 때부터 선교사로 헌신하고 사역을 하다 보니까 뭔가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나 경험과 지식이 없었다.

하나님께 무언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화장실 청소, 주방 청소, 창고 정리 등 단순 노동이었다.

언젠가 수천 명이 모이는 큰 행사를 담당하는 팀에 속한 적이 있다. 마침 그 행사를 앞두고 있었고, 내심 사람들 앞에서 멋있고 번듯해 보이는 일을 맡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창고 정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혼자 기대했다가 혼자 실망한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창고에 들어가 청소를 하는데 옆방에서는 행사를 위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런 일로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는데 기대를 해서였는지 큰 실망감이 찾아왔다.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고, 이런 혼잣말이 나왔다.

“창고 정리가 하나님나라에 무슨 큰 보탬이 될까. 그래도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하나님도 영광을 받으시고 그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이 무슨 보탬이 되겠어.”

이렇게 말하고 났더니 갑자기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낙심한 마음으로 기타를 들고 기도실에 들어갔다.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찬양집을 뒤적이는데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라는 찬양이 눈에 들어왔다.

“무화과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라는 가사였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이자 나에게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는 믿음의 선포였다.

하지만 내 상태가 상태인지라 이 가사가 고이 보이지 않았다. 가사를 읽어내려 가다가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그래요…. 주님, 저는 무화과 나뭇잎도 없네요. 포도 열매도 없고요. 감람나무 열매도 없고요. 식물도 없네요. 진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네요….”

그런데 후렴 부분에 이르자 예상치 못한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제가 진짜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주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밖에 없네요….”

분명한 것은 내 정신으로 한 고백은 아니었다. 이때 내면의 음성으로 주님이 이렇게 답하시는 듯했다.

“선교야, 그거야.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거란다. 난 네가 이룬 사역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너의 실력이나 외모도 바라지 않아.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바로 너야. 네가 가진 무엇을 기대하고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냥 너 자체를 원해.”

이 찬양은 원래 아주 밝게 부르는데 그날은 펑펑 울면서 불렀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그 음식을 먹은 사람에게 이익을 기대한다면 이 사람은 장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음식을 준비한 사람이 자기는 못 먹어도 먹는 사람이 맛있게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고 흐뭇하다면 그는 누구일까? 바로 부모일 것이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요한복음 10:12-15

주님은 우리의 존재를 죄인에서 의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회복시키신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얻으신 것이 없다. 우리의 존재가 회복되는 것 말고는 아무 관심이 없으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선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하나님을 대하다 보니까 우리를 존재만으로 사랑하시고 가장 가치 있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가치를 증명하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혹시나 잘못하고 능력이 없으면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니 세상에서도 힘들고 교회 안에서 무섭고 힘든 삶이 반복된 것이다. 하나님께도 인정받으려는 삶은 얼마나 피곤하고 고달픈 인생인가.

† 말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로마서 3장 23, 24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히브리서 11장 6절

† 기도
저를 존재만으로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봐주시는 그 은혜에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가는 매일의 삶이 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은 당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뻐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임을 늘 기억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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