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기가 모래 위에 성을 쌓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일에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에게는 지속성을 부여할 능력이 없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권력이 자기의 손에서 빠져나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갈 날이 올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른 사람이란 그가 사랑하는 아들일 수도, 딸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일을 지속시킬 수 있는 능력이 몇 년 후에는 그에게서 사라질 것이었다. 아들이나 딸이 그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친척이 권력을 잡으면 그의 일을 백지화(白紙化)시킬 수도 있었다.

이처럼, 탐구자의 모든 수고는 바람을 잡으려고 애쓴 것이었다. 이런 허망한 일 가운데 최초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창세기의 앞부분에 나오는 아담의 사건이다.

그에게 부여된 사명은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토지를 경작하고 땅을 정복하고 동물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결국 어떻게 했는가? 우상숭배의 죄를 범했다! 이브와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는(창 3:5) 사탄의 말을 듣고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는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만들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려고 했다. 동산의 열매와 세상의 관계들을 통해 만족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결과, 저주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그의 일은 열매와 즐거움을 선사한 것이 아니라 좌절과 고생을 안겨주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라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그는 결국 흙으로 돌아갈 운명이 된 것이다.

그가 평생 수고하며 일할 때, 그의 일을 위해 원료로 사용된 것들로 분해되어 결국 흙이 되고 말았다는 것은 참으로 얄궂은 결과였다. 흙으로 돌아간 그는 그가 평생 돌보았던 짐승들에게 밟히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탐구자도 이런 쓰라린 좌절과 실망을 맛보았다. 사업의 확장과 재정적 성공을 통해 편안한 삶을 살겠다는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오히려 불안과 불면증이 더 심해졌다. 이것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니라”(전 5:12)라는 그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이미 이룬 것 때문에 만족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룬 것을 지키기 위해 사업을 더 확장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 점점 더 심해지는 긴장과 불안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그는 결국 일이란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일에서 궁극적 만족과 인생의 근원적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세상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싸우는 정글이라는 결론만을 얻게 될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 말씀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 전도서 2장 22~23절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 전도서 4장 6절

† 기도
주님 내가 하고 있는 이 수고가 나의 만족과 자랑이 되게 하지 않게 하시고 앞으로도 주님께 영광 돌리는 일들에 사용되어지고 땀 흘리며 수고하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결국 흙으로 돌아갈 곳에 많은 욕심과 힘을 쏟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하루 사라지지 않을 저 천국에서의 삶에 욕심과 힘을 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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