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나는 ‘끝’에 대한 묵상을 정말 많이 했다.
지난 2년 동안 인도네시아 대학 사역의 필요 때문에 해외에서 사역할 일이 많았다. 집을 떠나 공항으로 가기 전에 가족들을 보며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라고 상기하곤 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내 생명과 안위를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셨다. 하지만 언젠가 그 손을 놓으시며 ‘이제 여기까지다’라고 하시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데려가실 시기를 알려주시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끝까지 비밀의 영역에 숨겨두시기도 한다. 끝이 있다는 사실과 그 시기를 사람이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인간을 겸허하게 한다.

나는 어려서 자주 아팠다. 여러 가지 질병을 경험했고,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100여 년 전에 태어났으면 과연 이 나이까지 살 수 있었을까?’

아마 항생제나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지 않았으면 이미 세상을 떠났지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지금 이 시대에 살도록 하셨기에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분의 도우심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

최근에 한 달 평균 5, 6회 정도 비행기를 탔다. 그때마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비행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때 찾아오는 마음은 두려움보다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잘 챙겼는지에 대한 자각이었다. 이런 자각은 내가 이 땅의 삶 가운데서 어느새 불필요하게 집착하는 것이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지인들을 갑자기 데려가시는 경우를 때로 맞이하곤 한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도 한 선교사님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던 선교사 가정에도 예외가 아니다.

내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남겨진 사람들’이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자신이 떠난 후에 가족이 먹고살 것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가족을 먹이고 입힌 건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 때문임을 믿는다면, 먹고살 떡을 준비하는 게 내 일차적 필요가 아닐 터이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내가 가족에게 남겨줘야 할 첫 번째 선물은, 그들이 느끼는 나에 대한 감사함과 관계 속에서 서로를 누렸던 추억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가족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마음에 담으려 노력한다.

주어진 하루 동안 내게 주신 관계를 기쁨으로 누리는 게 내게는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 중요한 준비이다. 그럴 때 잠시 서운한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을 빨리 정리하게 된다. 그러면 더 사랑하지 못한 아쉬움만 남는다.

또한 떠나기 전에 내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며 감정적으로나 관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한 게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함께 사역하는 공동체 식구들의 얼굴을 마음에 담는다. 언젠가 예기치 않게 끝이 올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내 믿음의 반응이다.

사역자들을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볼 때,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몹시 소중하게 느껴진다. 외부 사역을 하는 중에도 하나하나의 만남 가운데 최선을 나누고자 하는 열정이 생기곤 한다.

물론 앞으로 80세 이상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려면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하다. 건강에 투자하고 재정을 계획하는 것 또한 지혜이다.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에 이 두 가지를 같이 준비해야 한다.

내가 2020년을 눈앞에 두고 무리해서라도 안식년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학교와 기독 초중고교 교육 사역을 언젠가는 이양해야 하기에 주기적인 중간 점검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가장 좋은 방법이 모든 사역을 팀원들에게 맡기고 자리를 비워주는 것이다. 내가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사역을 전개하는지 한번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내가 리더로서 진행한 일을 중간리더들에 의해 점검받고 확인받는 시간이다.

2018년 말에 대학의 두 번째 건물 건축을 놓고 근심이 있었다. 대학교 첫 번째 학과 설립 허가를 받음과 동시에 두 번째 학과 설립 승인을 재차 받기를 시도하면서 인도네시아 고등교육부 직원들과 약속했다. 조만간 두 번째 건물을 짓고 계속해서 대학교 시설 확충에 투자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두 번째 건물을 지으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첫 번째 건물을 짓기 위해 1년 안에 40억 원이 넘는 큰 재정을 마련해야 했다. 난 너무 큰 짐을 지고 허덕였다. 물론 그 큰 부담과 함께 때에 맞게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도 누렸다. 하지만 또다시 그 과정을 겪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하나님, 지난번에 아무런 재정의 준비 없이 건축을 시작해서 그 과정이 너무 버거웠어요. 이번에는 최소한 건축 예산의 절반 이상을 채워주시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캐나다의 어느 권사님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뵌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분이었다. 권사님은 캐나다에서 남편을 여의고 두 자녀를 분가시킨 후 혼자 살고 계셨다. 권사님이 내게 학교 건축이 어떻게 됐는지 문의하셨다. 나는 잠시 원점에서 다시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답을 드렸다.

권사님은 다시 이메일을 보내어 사연을 알려주셨다. 작은 집 두 채가 있는데, 한 채는 임대하여 그 수입으로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고 했다. 그런데 권사님이 예배와 기도 가운데 ‘나머지 한 채를 팔아서 이용규 선교사의 사역지에 후원하라’라는 마음을 받으셨다고 한다.

권사님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감동을 주시면 분별하는 몇 가지 사인들이 있는데,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 강한 도전을 주셨다고 했다. 메일의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사후대책만 확실하면 노후계획쯤은 주님 품 안에서 다 해결될 것을 굳게 믿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내 안에 감동이 일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두 번째 건물 건축을 위해 다시 움직이고 계심을 느꼈다. 권사님이 보내시겠다고 약정한 후원액과 그 시기에 약속된 다른 재정을 합하니 딱 건축 예산의 절반이 넘었다. 나는 깨달았다.

‘순종을 선택하고,
순종할수 있는 힘 구하기’

그렇게 다시 건축을 시작했고, 2019년 말에 완공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나눈 이유는, 노후계획이 필요 없다거나 집을 팔아서 선교지에 보내라는 게 아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의 반응은 ‘사후대책’과 관련이 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죽음 이후 우리에게 펼쳐질 영원한 삶을 믿을 때 생긴다.

 인생의 끝을 생각할 때 우리는 과감하게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결정권을 맡길 수 있다. 집착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힘도 죽음 너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을 믿음 안에서 인식할 수 있을 때 나온다.

<이용규 선교사 글 중에서>

† 말씀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에베소서 1장 11, 12절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 시편 62편 5절

† 기도
하나님,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생명과 안위를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살 수 없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결정권을 맡기며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우리 모두에게는 ‘끝’이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죽음 이후 우리에게 펼쳐질 영원한 삶을 믿을 때 생긴다”는 저자의 말을 곱씹으며,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보내는 당신이 되길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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