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마음 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크게 되고 지혜를 더 많이 얻었으므로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들보다 낫다 하였나니 내 마음이 지혜와 지식을 많이 만나 보았음이로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 1:16-18)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모든 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탄식한 독일 철학자 헤겔(G. F. Hegel, 1770-1831)의 유명한 말은 절반의 진리일 뿐이다. 온전한 진리는, 과거의 교훈들이 오늘날 인간의 마음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없다는 것이다.

탐구자는 지혜가 우매(미련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우리가 지혜를 추구하든 미련함을 드러내든, 지혜롭든 미련하든 간에, 삶의 최종 결과는 모두 똑같아 보인다. 탐구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들 모두가 당하는 일이 모두 같으리라 … (전 2:14)

인생이 끝날 때,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공허함이 드러난다. 지식과 지혜도 헛되고 무의미하다. 지식과 지혜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육 자체를 추구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나는 학생 때 겪은 일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종교철학을 가르쳤던 강사가 어느 날 “학생이 제출한 과제물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나를 찾아오십시오”라고 내게 말했다. 당시 나는 젊은 기독교 신자였지만 그는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강의 내용은 시종일관 기독교의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려는 것이었다. 그랬던 그가 사실은 내 과제물에 높은 평점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한편으로는 놀랐고 기분 또한 좋았다. 하지만 내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강사와 나는 한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 과제물 내용에 대해 토론했다. 나는 그가 그토록 많은 시간을 할애해 내 과제물의 처음 두 문장에 대해 토론하려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 그 두 문장을 토론하느라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 분명히 사고하게끔 해줄 전제(前提)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일 탐구자가 그 강사와 내가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면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교육이 인생의 의미와 확실성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교육이 지성을 날카롭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없다.

탐구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는 교육이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들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거다.

† 말씀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 전도서 1장 14절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 전도서 1장 15절

† 기도
세상이 주는 지식과 지혜를 구하기보다 세상 위에 계신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구하게 하시고 사모하게 하시고 그대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지혜와 지식을 좇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돈? 좋은 직장? 우월감? 헛된 것에 속지 말고 삶의 이유 되신 주님을 좇는 자녀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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