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자는 ‘더 깊은 삶’이 무엇인지를 알기 원한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알기 원한다.

사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게 꺼려진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삶과 더 깊은 삶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내 마음은 그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고 그분은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실 것이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그분 안에 있는 더 깊은 삶을 아는 것이다. 내가 그분을 아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전부 나의 적(敵)이다. 내가 받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그분과 나 사이를 떼어 놓는다면 나의 적이다.

나는 ‘문제 직방 해결법’ 같은 것을 별로 믿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삶의 신비를 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너무 간단하게 느껴지는가?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렇게 간단하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라”는 격려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흔히 범하는 잘못은 하나님을 상자 안에 넣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자 안에 들어가는 하나님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아버지가 아니다. 그런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통제되고 인간의 마음대로 조종되는 하나님이지 성경의 하나님은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 즉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이 우주 안에 계신 경이로운 전능자이시다. 그런 분이 미천한 인간이 만든 작은 상자 안에 들어가실 수는 없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겠다는 의지가 우리에게 충만하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 계신 분’으로 느끼는 마음이 우리 안에 가득 차게 될 것이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학문의 차원을 넘어
놀라운 인격적 만남의 차원으로 올라갈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말하고 싶은 궁극적 진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실 때, 비로소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실 때, 비로소 십자가에 못 박힌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 말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로마서 1장 21절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호세아 6장 6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에베소서 4장 13절

† 기도
주님,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알고 믿길 원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깨닫길 원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삶, 더 좋은 삶에 대한 갈망을 불어넣어 주옵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겠다는 의지가 충만한가요? 십자가에 못박힌 삶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살길 소망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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