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면 더 이상 힘들지 않고 잘 될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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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보다보면 행복한 웃음과 풍족한 삶의 모습이 부러워질 때마다 ‘ 내 아버지는 하늘 아버지야!! 난 부족함이 없어!’라고 선포해보지만 그럼에도 아주 가끔은 부럽고 외로움에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이정도 힘들었으면 좋아져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서운함으로 가득차 임마누엘 주님과의 동행의 기쁨을 놓치지 않기를 다시 한번 회개합니다. 나 혼자 버둥거리는 삶이 아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축복이 오늘 여러분 가정에 있기를 축복합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은 신비였다.
사람과의 만남에서부터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이 채워지는 일들을 보며, 나는 예수님의 이름이 왜 임마누엘인지 알 것도 같았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_마 1:23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다.
그 하나님이 앞으로도 이 교회를 인도하시리라 믿으면 걸음을 계속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교회를 시작한 초반 몇 년, 나는 왠지 모르게 비틀거리며 살았다. 힘든 인생길, 그럴 수밖에 없다고도 여겼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당시 내가 임마누엘 예수님과 언제나 동행한 것은 아니라는 게 근본 원인이었다. 예수님이 서 계신 자리에서 나 혼자 저만치 앞서가거나 혹은 뒤처지거나 할 때가 많았다.
어쩌다 그 지점이 교차되는 순간에 나는 가끔 그분의 음성을 들을 따름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나 혼자 버둥거리며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목자이신 주님과 매 순간 함께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광야길을 끝없이 홀로 뛰는 마라토너의 외로움 같은 게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기야 하나님과 보폭을 맞추며 그분을 의지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사람에겐 익숙지 않은 습성이었다.

어쩌면 나는, 민낯을 다 보여야 하는 교회 공동체의 사모 노릇을 하느라 그럴 틈이 없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뭐든 잘해내고 싶고 잘해내야 산다는 강박이 내 행동과 언어의 발목을 잡아끌면서
나는 주님과 호흡을 맞추는 속도 조절에 실패하곤 했다.

‘교회만 시작하면 모든 게 저절로 될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일에 대한 순종이었기에 나는 그저 교회만 개척하면 담임목사 부부에 걸맞은 능력이나 리더십, 영성 같은 게 저절로 주어질 줄 알았다. 다각적이고도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삶의 여러 정황에 믿음으로 의연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든지, 어려움을 겪는 교인들에게 재빨리 신앙적인 답변을 알려준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저절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문제에 빨리 답을 하려 할수록 내 안에 아무런 답이 없음과 마주해야 했다. 나 자신의 문제를 잘 처신하거나 누군가를 진정 돕고 싶다면,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을, 아니 그 동행의 훈련에 적극 참여해야 함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럴 무렵, 하나님께선 내게 ‘성장’이란 단어를 자주 들려주셨다.
“하나님 왜 이렇게 힘이 듭니까?”라고 물으면 마치 우문현답처럼 “사람은 계속 성장해야 하고, 성장할 수 있단다”라고 하셨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매순간 어디로 가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알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같이 살기로 했다>한근영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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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성윤리연구소(분당우리교회:이찬수목사)에서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