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탈리아 아시시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매일 아침 아내와 함께 언덕에 자리한 산 루피노 대성당에서 산타 키아라 성당까지 걸었다. 그런 다음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좁은 길을 따라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까지 걸어갔다.

그때는 몰랐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이 광장을 중심으로 악에 맞서는 용감한 비밀 행동이 펼쳐졌다. 산타 키아라 광장 변에 자리한 어느 상점 뒤에서 무신론자인 용감한 상인이 이탈리아 유대인들과 유대인 난민을 위해 위조 신분증을 준비했다. 그는 그걸로 이들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들과 히틀러의 나치 정권으로부터 지켜냈다.

같은 시기에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자 평범한 시민이 자신의 리더십과 힘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이 사람은 자주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피렌체를 가로질러 토스카나 언덕을 넘어 아시시까지 갔다. 그는 산 다미아노로 알려진 교회에 자전거를 몰래 가지고 들어가 용감한 사제가 전해준 가짜 신분증 서류와 사진을 안장에 숨겨와 유대인 난민에게 전달했다.

이탈리아의 가장 위대한 사이클 선수 지노 바탈리가 그때 체포되었다면 처형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바탈리는 목숨을 걸고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를 움직인 것은 그의 믿음과 기도, 정의롭고 옳은 일을 하겠다는 결심과 피렌체의 엘리아 달라 코스타 추기경이 시작한 비밀 조직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탄 바탈리를 사이클 선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자 했던 지도자로 생각해보라. 그는 목사가 아니었다.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은 목사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리더십 은사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와 충실히 연결된 공동체에는 인간 왕이나 황제나 재판관이나 족장이 더는 없을 것이다. 오직 한 왕이시며 황제와 재판관과 족장인 분이 계실 것이며, 그분의 이름은 예수이다.

이 새로운 지도자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충성된 모든 지도자는 예수의 제자가 되며, 이것은 모든 제자가 ‘십자가형’(cross-shaped)이라는 뜻이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부터 성령의 자극을 받는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종이다. 이들은 바탈리처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건다. 교회 지도자들과 싸우는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리더십을 자신의 대의와 평판을 위해 사용하는 지도자들과 싸운다.

성경에서 리더십과 관련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순간이 된다. 이 일은 사도행전 1장에서 일어난다(행 1:15-26). 유다가 예수님을 버렸고, 나머지 제자들은 유다를 대신할 한 사람을 세워 열두 제자를 유지해야 했다. 이들이 후보의 자격과 자질과 기술을 논의했는가? 새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 투표하고 로비를 벌였는가?

아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하나님과 성령을 향하고 주사위를 던졌다(성경은 이것을 ‘제비뽑기’라고 부른다). 후보는 맛디아와 바사바로 좁혀졌다. 이들은 제비뽑기로 하나님의 선택을 알려달라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구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이 주관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주관하신다고 믿을 때에만 이렇게 할 수 있다.

사도들은 십자가형 리더십을 배웠다. 나의 친구이자 훌륭한 성경 교사인 존 누젠트(John Nugent)가 한 말에 동의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칭찬받는 세상 지도자들의 보스 자질을 어느 하나도 발견할 수 없다. 교회 지도자들이 매력적이거나, 카리스마가 있거나, 결단력이 있거나, 설득력이 있거나, 위엄이 있거나, 성취한 것이 많거나, 심지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도 없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질이 충분했지만 공개적으로 그것들을 버렸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전 2:1-5).

세상의 리더십은 우월한 사람들의 출중한 능력을 의지한다. 특출난 사람들을 세워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들이 조직을 위해 자신의 힘을 책임 있게 사용할 것을 믿으며 일을 완수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리더십을 세우지 않으셨다.

존 누젠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왕 아래 사는 교회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아주 잘 표현했다. 지도자들이 일을 완수할 수 있도록 회중이 지도자들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다. 지체들이 몸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지도자들이 그들을 세워주는 것이다.”

성령께서 세우시고 빚으신 성실한 교회 지도자들은 칭호가 있지만 힘이 없다. 이들은 교회의 직무가 있지만 세상 범주에 따라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교회 예산과 부지, 사례비나 집의 크기 등은 상관이 없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썼고, 교회 지부가 몇 개인지 등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잣대는 모두 크기에 관한 것이고, 자아에 관한 것이고, 어떤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을 향하는 지도자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고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따르게 하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희생과 자신들이 섬기는 사람들의 삶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새로운 지도자들의 사명은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성령께 열려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지배와 강요가 없는 십자가형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십자가형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을 섬긴다. 예수님처럼. 당신은 새로운 지도자, 곧 십자가형 지도자에게 열려 있는가? 당신이 그런 지도자가 되는 데 열려 있는가?

† 말씀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고린도전서 2장 1-5절

† 기도
하나님, 제 마음 안에는 높아져서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대접받으며 리더십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리더십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요… 이런 마음이 함께 도사리며 치열하게 싸웁니다. 어느 곳에서든 높아져서 내리 누르려는 악한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세워주셨던 주님과 같이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세상은 우월한 능력을 가진 자가 되어 지배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지배와 강요 없이 그들을 독려하여 세우십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처한 곳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입니까? 그리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어떤 리더십을 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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