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걱정, 근심, 염려, 두려움,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자기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은 그 감정을 없애는 일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그 감정을 가지고는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온전한 기쁨과 평강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는 잠시 괜찮은 듯하다가 다시 똑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 삶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생명적 관계를 아는 사람의 반응은 전혀 다릅니다. 자신의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자에게 있어서 불안과 두려움은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하나의 지표가 됩니다.

염려, 걱정, 불안, 두려움을 찾아올 때 ‘아, 나의 영적 보호막에 손상이 갔구나’ 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가운데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이 세상 가운데 내쳐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릴 때의 기억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비록 가냘픈 어린아이라해도 부모의 손을 잡고 있으면 두렵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행복해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부모의 손을 놓치고 잠시 방황하게 될 때 모든 것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에 어린아이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막무가내로 아빠 엄마만 찾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하신 뜻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닥칠 때 어떻게든 그 문제를 스스로 피해보려고 하거나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문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이자 최종적인 권위자인 아빠 엄마를 애타게 찾습니다. 그러다가 아빠 엄마를 찾으면 활짝 웃습니다. 자기 앞에 닥친 문제는 자기가 아니라 바로 아빠 엄마가 해결할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이 마음을 원하십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장 18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생명 안에 거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 어린아이로 말하면 아빠 엄마의 손을 잡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했으니 결국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면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우리가 풀기 어려운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문제 때문에 걱정, 불안,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는 삶이 바로 하나님 자녀의 삶입니다.

† 말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베드로전서 5장 7절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누가복음 15장 18~20절

† 기도
주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만 해결하기 위해 주님을 이용했던 저의 태도를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마귀는 문제를 통해 저를 세상으로 끌어내어 죽이기 원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속지 않고 그때마다 곧장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나라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살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걱정, 불안,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까?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우리의 생명이자 최종적인 권위자인 하나님을 찾기 위해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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