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면 죽는 나무,
그렇게 위험한 나무라면 높은 산꼭대기 절벽 위에 두시거나 거대한 폭포 아래 두시지, 왜 동산 한가운데 두셨을까.

왜 대규모 군락을 이뤄 근처에 가기만 해도 역겨운 냄새가 나거나 찌릿찌릿 전기가 흘러 가까이 가고 싶지 않게 만들지 않으셨을까. 큰 나무였다면 여자 혼자 사다리도 없이 열매를 딸 수 없었을 텐데, 만만하게 생긴 나무를 딱 한 그루만 만들어서 동산 한가운데 두셨다. 너무도 다가가기 쉽고 눈에 띄기 좋도록.

하나님은 이 나무 한 그루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을까.

무방비 상태로 서서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동산에서의 삶을,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거절하고 거부할 자유가 있음을 보여주는 이 나무는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람은 정해진 배터리 용량만큼,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사용되다가 소모되는 로봇 같은 존재가 아니다. 예쁘게 꾸며놓고 보면서 즐기는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든 AI 로봇에게 절대로, 조금도 주지 않을 그 자유. 생각하는 자유, 로봇 스스로 깨우쳐 획득할까봐 두려운 그 자유. 선택의 자유. 거부할 자유.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자유를 주시되 어렵게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서기만 하면 되도록 배려까지 해주셨다.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지만 그 나무는 먹고 싶으면 먹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위해 사람에게 이 자유를 주신 것인가. 아니다.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다. 사랑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고,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다(고전 13:4-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진정한 이름은 ‘사랑의 나무’인가보다. 하나님은 동산 가운데 사랑의 나무를 심으셨다. 사랑을 심으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시되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의 방법과 색깔을 담아 한 그루 나무로 나타내셨다.

아담과 하와는 왜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 그들은 다른 종류의 피조물이 된 것과 다름없었다.

종(種)의 변화라고나 할까.
이 변화를 ‘타락’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한 존재가 단순히 타락했다기보다는 한 존재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처음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종의 피조물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그들의 후손인 우리는 처음 아담과 하와의 후손이 아니라 타락 이후 완전히 다른 종이 된, 이름을 붙이자면 죄인 된’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후손이다. 그래서 ‘죄는 아담과 하와가 지었는데 왜 우리까지 죄인이라고 하느냐’는 내 항변이 성립되지 않는다.

타락 이전에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죄인이 된 그들은 더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 곧 우리의 특징은 죽도록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종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세상이 자기 사랑으로 넘쳐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자기를 사랑하는 건 곧 타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타인에게 사랑을 주지 않으니 그 타인은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 또 다른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른다. 결국에는 사랑이 뭔지도 모르게 되어 자신도, 타인도 사랑할 줄 모른다. 자기 사랑은 사랑에 대한 무지와 불가능을 낳고, 자기 존재에 대한 무지를 낳으며, 결국 자기 사랑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사랑의 본을 몸소 보이셨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 이야기는 그 사랑이 깨어진 자리에서도 멈추지 않았고, 동산 중앙에 있던 한 그루 나무에서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로 끝없이 이어졌다.

사랑을 모르는 나를 위해 그분이 지신 십자가. 사랑할 수 없는 자가 사랑해야 하는 내가 진 십자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 2:20

 

† 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요한일서 4장 7, 8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요한일서 4장 9, 10절

† 기도
하나님, 사랑은 어리석고 바보 같은 것입니다. 자기보다 다른 이를 배려하고, 그가 자유롭도록 해주는 것. 바로 하나님 당신의 사랑이 그렇습니다. 당신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알지 못하고 나만을 위하고 사랑했던 저를 용서하소서. 주님의 그 죽기까지 하신 사랑을 내 마음에 부어주시고 나누는 자가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타락으로 인해 죄인 된 우리는 오직 나 자신만을 사랑합니다. 타인을 사랑하지 않고 배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사랑하신다고, 그리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 그 십자가의 사랑을 나누어 보는 당신이 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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