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청년들은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를 멘토로 삼고 그런 가정과 부부, 관계를 소망한다. 결혼으로 낙원이 도래하여 거기서 완벽히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상대를 고르고 정하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다.

결혼 상대를 정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요 착각이다. 그런데 이 착각 위에 가정을 세우는 청년들, 특히 자매들이 굉장히 많다.

나를 낙원으로 데려갈 상대란 없다.

이건 아담과 하와도 하지 못한 일이다.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하는 남편과 해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아내가 되었으니 결혼이야말로 추방된 삶의 실사판인 것을!

충격을 줄이고 대처할 방법을 가르쳐 가정과 자신을 지키게 하려 해도 이들의 환상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상대에게 모든 것을 걸었기에 아직도 낙원에 입장하지 못하는 건 선택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어리석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던 때로 돌아가 다른 상대를 대입해본다. 상상 속이니 물론 낙원으로 쉽게 갈 수 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어떤 날들을 보냈을까.

쫓겨나면서 그때까지의 기억도 다 잃어버렸을까. 그들이 처음 만난 순간과 충만했던 사랑, 벗은 몸을 서로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 감정은 어떻게 됐을까.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던 남편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릴 때, 면전에서 그 말을 듣는 하와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들은 서로 사과했을까. 그렇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아니라고. 미안한 건 나라고. 내가 어리석어서 당신까지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렇게 화해가 이뤄졌을까. 사과의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매 순간 느낄 때마다 그 절망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들이 먹은 열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까.

하나님이 ‘처음 주셨던 말씀’과 사탄의 속임수, 그리고 이어진 자신들의 결정을 수없이 되돌려보면서 그들도 알지 않았을까. 그 나무의 진짜 이름을.

하나님의 진심을 깨닫고 그들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어쩌면 이 괴로움 덕분에 하나님이 ‘다시 주신 말씀’을 자신의 가슴에, 서로의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단 둘, 그것도 부부로 살면서 비참하게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하지만 정서적 분리, 에덴과의 분리 그리고 하나님과의 분리를 고스란히 겪으며 세상에 나 혼자라는 고독과 고립의 감정으로 각자 병들어갔을 것이다.

아담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 아니 소유했으나 빼앗긴 것을 그대로 기억한 채 천 년 가까운 생을 살았다. 이 세월 동안 그가 낳은 자식들과 그 이후에 태어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본질과 본성, 그 삶에 사랑 없음과 하나님을 찾지 않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사탄이 다가와서 속삭이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아도 자기들이 알아서 죄를 향해 달려가며, 죄를 좋아하고, 죄에 쉽게 끌리며 죄를 사랑하는 그들을 지켜봐야만 했을 것이다.

이제는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게 된 하나님의 존재를 아담은 어떻게 간직했을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사람을 지으신 것과 그분이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약속을 하셨는지 사람들에게 계속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들이 “그렇다면 지금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고 물을 때 하와 때문이라고 변명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는 않았을까.

여자의 후손을 기억하며 그가 과연 누구일까, 천 년 동안 얼마나 기다리고 찾았을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있으면 내 눈에 보여 보라”라고 할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당신이 받은 그 약속은 언제 이뤄지는가?”라고 묻는 사람들, 몇십 년도 아니고 몇백 년이 지나 천 년이 되는 동안에 이루어지지 않는 약속을 기다리는 아담을 향해 집요하게 하나님이 계신 증거를 대보라는 그들에게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분명히 내가 그분과 함께 있었고, 그분은 우리와 다른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그분이 이 세상을 다 지으셨고 우리를 만드신 분”이라고 말했겠지만, 그래 봐야 아담 역시 우리처럼 증인일 뿐 보여줄 증거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보았으나 이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음을 자신이 잘 알았기에 “나 자신이 증거”라는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있는 것은 우리처럼 믿음밖에 없었다. 약속에 대한 믿음, 말씀에 대한 믿음.

아담은 또 보았을 것이다.

전쟁과 질병과 죽음 앞에서 공포와 두려움과 무기력과 불안에 빠진 인간들이 무언가에 의지해 버텨보려는 것을. 그리고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만은 비켜 가는 것을.

이때 아담은 깨닫지 않았을까. 그들이 간절히 비는 것의 본질은 이 모든 능력 밖의 현상들을 컨트롤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려는 마음이며, 그 마음의 더욱 깊은 본질은 자신이 에덴에서 하와가 내미는 나무의 열매를 받아들었을 때의 마음과 동일함을 간파했을 것이다.

구원의 본질은 오직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는 약속에 달려 있다. 이 약속에 대한 믿음이 그를 살게 했을 것이다. 원래의 목적과 상태를 아는 그가, 그것과 완전히 벗어난 상태와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가장 큰 벌이 아니었을까. 이 천형(天刑)을 안고 살았던 아담에게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왔다. 그러나 그때 선고받은 죽음은 벌이었지만, 이제 아담에게 죽음은 가장 간절한 선물이 되었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 에덴에서 눈뜨기를, 이곳을 벗어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다시 하나님을 만나기를, 이제는 그분 앞에 부끄럼 없이 서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을까.

결혼은 낙원으로 가는 문이 아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아는 사람들이 그것을 찾을 날을 꿈꾸며 함께 버티는 신랄한 현실이다. 아담과 하와도 이렇게 살았다.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에덴에서의 안락한 삶인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에게 결혼은 아주 힘들 것이다. 그런 삶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하나님이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다. 그것은 결국 사랑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을 잃었다.

결혼을 통해 하나님을 찾고 동행하며,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애쓴다면 결혼을 잘한 것이다. 모두가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결혼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들어도 사랑하는 삶을 꿈꾼다면 결혼을 하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에 가정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 말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 요한일서 4장 11, 12절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 시편 6편 4절

† 기도
하나님, 오늘도 신랄한 현실 앞에 서서 달려갑니다. 그 신랄한 삶의 현장에 주님과 함께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게 하소서. 주님 앞에 부끄럼 없이 서며 하나님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받은 사랑을 나누며 충만히 누리는 곳이 낙원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동행하며 그 사랑을 나누는 곳, 당신이 선 곳이 그런 곳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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