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볼 때마다 가슴 뭉클한 이름,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

0
143
4,437

부를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안심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어릴시절 무서운 꿈을 꾸고 나면 자다가도 ‘엄마~’하고 부르면 당장 달려와 주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혹 엄마가 깊이 잠들어 바로 달려오지 않으시더라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있기에 안심이 되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젠 ‘주님’을 부르며 그분의 날개 아래로 들어갈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어린 시절에 해질 때까지 교회 마당이나 골목에서 같이 뛰놀던 언니, 동생, 친구들이 있었다. 어쩌다 집에 놀러 가보면 사는 모습이 다 달랐다. 우리 집보다 작은 집은 아늑해서 좋았고, 더 큰 집에 가면 간식을 신나게 먹으며 여기저기 구경하느라 재미있었다.
나는 이런 차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어릴 때의 이런 무던한 성격으로 쭉 자랐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자랄수록 부러운 것이 많이 생겼다. 내게 없는 것, 가지지 못 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느라 가슴이 아팠다. 속이 상했다. 다 커서 만난 이 감정에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때마다 부러운 것도 견디기 힘든데 꼭 죄책감이 같이 따라왔다.
‘다른 사람의 행운과 행복에 진심으로 축하는 못할망정 심술을 내는 나쁜 사람’이라고 신랄하게 정죄했다. 가질 수도 없는데 부러워도 못 하다니….

주일이면 가진 것에 감사하라고 자주 설교하셨다.
하나님이 내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걸 믿고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라고 하셨다.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빌 4:12).

그때마다 나는 꼭 혼이 나는 것 같았다.
남을 부러워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가. 내가 빼앗아 달라고 했나, 훔쳐 달라고 했나. 그저 부러웠을 뿐이고 그 마음을 달래느라 힘들었는데, 아무도 몰라주니 내 마음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공감과 위로만 있었어도 견디기 쉽지 않았을까.

길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내 옆에 누가 있는지….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서 부러워하던 순간들. 하나님께 달라고 하기에는 그것이 거룩하지 않아서 기도도 안 나오던 것들. 그런 시간을 지나 뒤돌아보면,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내가 어딜 그렇게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지 내 옆에 서서 찾아보신 것 같다.
“저거?”라고 하시면서. 내가 느낀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표현이 다 좋지만 떠올리고 불러볼 때마다 가슴 뭉클한 이름은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내 결핍을 아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시는 분으로 다가오셨다.

서러운 시간은 지나갔다. 하나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 마음과 진심을 아시기에 기도가 짧게 끝날 때도 있지만, 내 마음을 아시기에 오래오래 그분 앞에 앉아 있기도 했다.

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알고부터 전전긍긍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배가 부르고 주머니는 두둑하다.속이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어렸을 때 혼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배웠던 ‘일체의 비결’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부인하고 저주했던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주님께서 아신다고 고백하는 이 순간. 이 사랑이라는 말에 그는 다시 태어난다. 베드로를 아신 예수님은 그를 사랑하셨고, 이 질문으로 그를 살려내셨다.

‘부러움’이란 감정에 트라우마가 남았는지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묻는다.
안 부러워? 아이들은 ‘그래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니요.

그래, 아직 오지 않았구나. 하지만 언젠가 그런 일을 만나게 될 거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부러운 일들이 네 인생에도 생길 거야.
그러나 그때 길까지 잃어버리지는 말아라.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시란다.

<사랑으로 산다>최에스더 p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