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는 사무엘상이 기록된 당시의 영적인 지도자였다. 그렇다면 사무엘상의 주인공은 응당 엘리 제사장이어야 맞다. 그런데 사무엘상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어린아이인 사무엘이 주인공임을 느끼게 된다.

물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사무엘이 무대의 전면에 나서는 것이 이해가 되지만, 사무엘상의 시작 부분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대표적인 종교 지도자 엘리 제사장은 사실상 엑스트라이고, 실질적으로 그 시대의 영적 흐름을 주도해나가는 주인공은 사무엘이었다.

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나라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그 사람의 모양이나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직분이 그 사람을 저절로 믿음의 사람, 순종의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무서운 진리가 아닐 수 없다. 특별히 나 같은 목회자나 교회의 수많은 중직자들은 이 진리를 더욱 깊이 명심해야 한다.

나는 엘리 제사장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당대를 대표하는 제사장이란 직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직분은 엘리를 순종의 자리로 이끌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영적으로 퇴보하게 만들었다.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낭패를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직분을 자신의 수준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영적으로 후퇴하고 퇴보하는 자가 될까봐 근심한다. 그래서 엘리의 모습을 더욱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무엘상은 엘리에 대해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삼상 2:22)
그때에 엘리의 나이가 구십팔 세라 그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삼상 4:15)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의 이미지는 늙고 초라하다. 눈이 어두워지고 자꾸 눕고 싶어 하는 모습이다. 단순히 나이가 많아 늙었기 때문에 체력이 약해진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엘리의 영적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교회에 구십 세 된 어르신이 계시는데, 어느 날 그 분이 체육관에서 의자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른다. 성도들을 위해 의자 하나를 펴는 일이라도 섬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뜨거운 마음을 가진 어른을 보고 어떻게 늙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적으로는 누구보다 더 청춘이셨다. 나는 나와 모든 성도들이 이 어르신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몸이 쇠약해지고 자꾸 눕고 싶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다. 하지만 우리의 영(靈)만큼은 주님 앞에서 갈수록 더 뜨거워지고 더 새로워져야 한다. 주님 보시기에 날마다 어린아이같이 기뻐 뛰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에게는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워 기도하고 있던 한나에게 엘리 제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삼상 1:12-14)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보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말도 나오지 않아 그저 예배당에 앉아 입술만 간신히 달싹이며 “주님, 나 좀 살려주세요” 하고 있는데, 목사라는 사람이 가서 “집사님, 아침부터 술 드시고 교회에서 뭐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그 성도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겠는가? 어쩌면 실망감을 가득 안고 교회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엘리의 상태가 바로 이랬다.

우리 교회 교역자들에게 늘 강조하여 말하는 것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사람은 악한 일로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약하고 둔해지면 상처를 주게 된다. 성도들은 지금 죽을 것같이 아픈데 그것을 전혀 모르는 둔감함이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민감해야 할 때 민감하고, 둔감해야 할 때 둔감해야 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후배 교역자들에게 강조할까? 우리는 좀 둔감해도 괜찮은 것에는 엄청 예민하고,
반대로 예민해야 할 것에는 둔감한 미련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진심으로 두려워하며 경계하는 것 중 하나는 우리 교회 후배 목회자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보다 설교 잘하는 후배 교역자에 대해, 나보다 더 인정받는 후배 교역자에 대해 질투를 느끼게 된다면 이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한다. 내 생애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또 기도한다. 둔감할 때 둔감하고, 민감할 때 민감할 수 있도록. 엘리 제사장처럼 영적으로 둔감해지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민감하게 위로해주고 어루만져주어야 할 때 실패하게 된다.

† 말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 시편 42장 1절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 골로새서 4장 2절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디모데후서 2장 15절

† 기도
주님 앞에 어린아이와 같이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영이 날마다 더 뜨거워지고 새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영적으로 둔감해지지 않도록 기도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도록 깨어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우리의 영이 날마다 더 뜨거워지고 새로워지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결단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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