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은 예수님이 당신과 맺기 원하시는 관계를 놓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과거 때문에 예수님이 당신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분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체가 아닌 하나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상대하는 빈 공간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어떤 개념으로 사랑을 느낄 수 없다.

사랑은 관계적인 단어다.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조건 없는 용납을 경험하는 것은 모든 선한 것이 자라나는 씨앗이다.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사랑이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오니 성령의 열매가 싹을 틔웠다. 나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평안하고, 더 많이 인내하게 되었다. 이제는 180도 다른 사람이었다.

어느 여름이었다. 기독교 캠프 운영진 한 사람이 내게 이렇게 털어놓았다.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느껴본 적은 있습니까?”

“그럼요, 당연하죠.”

“그러면 그 사랑을 스스로 느끼고 깨달아본 적은 있나요?”

“글쎄요, 없는 것 같네요.”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걸 느끼면 결혼생활이 달라질 겁니다. 정확한 방법은 나도 몰라요. 그건 주님께 달렸어요. 그분이 하실 겁니다.”

이듬해 여름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났는데, 결혼생활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그가 말하길, 지난해에 그의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차고 넘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찰스 스탠리(Charles Stanley) 목사는 이렇게 적었다.

“그리스도의 삶의 본질은 일련의 규칙과 규율이 아니다. 구세주와 함께 매 순간 친밀한 관계를 나누는 것이다. 인간적인 용납의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내 안에 거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요 15:4)은 실제로 그분의 임재 가운데 살라는 초대다. 의사 결정 과정에 예수님을 맞아들이자 그분의 임재가 내 경험에서 매우 개인적인 부분이 되었다. 그것은 나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당신에게 예수님의 임재 경험이 부족하다면, 그분을 실제로 느끼게 해달라고 겸손히 구하라. 그분의 사랑을 부어달라고, 당신이 그분의 임재를 두려워하거나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그 임재로 위로받을 곳으로 인도해달라고 구하라. 예수님은 성령님에 이끌린 이런 진심 어린 요구를 흔쾌히 들어주실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당신은 예수님이 그 삶과 죽음으로 값을 치르신 보상을 얻게 될 것이다.

“구세주와의 우정은 우리 각 사람을 향한 그분의 사랑과 관심을 끊임없이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께 끊임없이 집중하는 삶은 깨지지 않는 우정을 누리는 삶이다. 승리와 평안, 희망, 안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정의 삶이다.”

† 말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장 20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브리서 12장 2절

† 기도
제 삶의 중심에 주님이 계십니다. 언제나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의 임재를 구하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당신은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나누고 있나요? 좋은 친구 되신 그분과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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