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일학교 선생님이 된 이유

답 없는 녀석에게 주시는 사랑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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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없는 녀석에게 주시는 사랑과 기도.

나는 말썽 많고 탈도 많던 유년기를 보냈다. 교회 봉고차 위에 올라가서 슈퍼맨 놀이를 하다가 뛰어내렸는데 머리를 부딪혀 기절한 적도 있었다.

교회 첨탑 성탄장식을 하는 형들을 보고, 혼자서 첨탑에 몰래 혼자 기어 올라갔다가 철사 장식에 머리가 찢어진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교회 목사님들, 선생님들이 나를 업고 응급실로 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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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예배에 안가고 오락실에 있었는데, 선생님이 나를 찾으러 오락실로 오셨다. 나는 끌려가면서도 반항의 목소리를 높였다.

“왜 주일학교 선생님이 예배는 안 드리고, 예배 시간에 오락실에 옵니까?!”

흔히 말하는 답이 없는 녀석이었다.
그 분은 매일 내 영혼 살려달라 기도하셨고,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나를 찾으러 오락실로 오셨다.

나는 가난한 산동네에 살았다.
집에 부모님 없이 여동생과 둘이 종일 있을 때가 많았다. 당시 주일학교 우리 반 선생님은 대학교 1학년 여선생님이었다. 매일 새벽예배 때마다 나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공과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내게 물으셨다. “준기는 어린이날 하고 싶은 것이 뭐야?”

나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동물원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어린이날 아침이 되었다.
그 분이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휴일에도 내가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 분이 환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준기야! 우리 함께 어린이 대공원에 가자!”

그 분도 우리 동네에서 하숙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스무 살의 여학생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내게 최고의 어린이날을 선물해주셨다. 선생님이 동물원에서 사주셨던 솜사탕 생각이 아직도 난다.

유독 짧은 하루였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집 앞에 바래다주셨다. 우리는 다시 아무도 없는 집 앞에 섰다.

인사하고 들어가려는데,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셨다. 그리고 말씀해주셨다. “준기야, 하나님 아버지가 널 사랑하셔. 너는 너무너무 소중한, 하나님 아들이야. 아무것도 걱정 말고 선생님과 함께 기도하고, 예배도 잘 드리고, 목사님 말씀도 잘 듣자. 응?”

그 분들 중 누구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모두가 나를 기도로 키워주셨다. 말썽 많고 문제 많던 아이가 나중에 커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 분들의 기도 덕이다.

어린 시절에는 믿음 없이 그저 교회에 놀러 다녔다. 그러다 중학생 때 나를 예수님께 드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후, 이전에는 없던 꿈이 하나 생겼다. 나도 주일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다. 나 같은 말썽꾼들에게 복음을 전해주는 것이 내가 진 사랑의 빚을 갚는 길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회 선생님이 되어. 나는 매일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름을 써놓고 기도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던 그분들처럼. 그리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예수님 따라서.

★ 말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요한복음 15: 4,12

★ 묵상
#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 하나님이 돕고싶으셔도
# 도우실수가 없다 _EM바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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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기도하기 싫을까요?
# 근본을 파헤치니
# 하나님만 높아지고
# 내가 낮아지는 것이 싫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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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이런 교만을 회개합니다
# 내뜻죽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시도록
# 우리의 기도. 헌신. 주여 사용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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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슬어 없어지는 것이 아닌
# 기도하다 닳아 없어지리라!
# 한알의 밀알이 죽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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