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기도’인데, 기도에 영적인 것을 움직일 힘을 부여하는 것은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적 세계를 움직이는 비결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의 기도’다. 믿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비밀이 있다.

[약 1:6,7]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그만큼 믿음은 영적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믿음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신비가 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것이 보이는 세계에서 실체가 되게 한다.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것을 보이는 세계의 실체로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령한 복을 하늘에 준비해두셨다.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복을 어디에 준비해두셨는가? 하늘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그렇다면 하늘에 있는 모든 신령한 복(spiritual blessings)을 어떻게 보이는 세계로 가지고 올 수 있을까? 그렇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가져온다. 믿음은 하늘에 있는 것을 땅의 실체가 되게 한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림자가 아니라 ‘본체’를 움직인다.

믿음의 본질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거야!”, “반드시 될 거야”’ 이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자기 세뇌에 가깝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반드시 될 것이라는 상황에 대한 믿음도 필요하다. 그러나 ‘왜’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가? 하나님을 신뢰하니까! 이것이 믿음의 핵심이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신뢰하는 것이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는 영적인 ‘시차, ‘delay’가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본체가 움직이면 우리의 싸움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땅에서 실체로 드러나기까지는 시차가 있다. 언제 그림자가 움직이는가? 모른다. 즉시 움직일 수도 있고, 하루 있다가 움직일 수도 있고,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모른다. 그래서 딜레이 되는 시차 동안에 요구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이다. 어떤 믿음? 하나님에 대한 믿음! “그분이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이루어져. 그분이 약속하셨으면 확실히 이루어져!” 이 믿음이 요구된다. 이 믿음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믿음은 ‘인내’다.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하나님이 행하실 때까지!

우리의 믿음은 광야에서 자라나고, 광야에서 발휘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모든 것이 완전할 때는 믿음이 설 자리가 없다. 광야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고통 속에서 –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은 산을 옮기신다.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신다. 그것도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만 있어도 말이다. 믿음은 이 땅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산이 앞에 있다. 이 산을 옮길 수 있을까? 작은 동산쯤이야 사람을 동원하고 건설사가 움직이면 옮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산이 설악산이나 히말라야산이라면? 불가능하다.

인생을 살다보면 산을 만날 때가 있다.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산.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치병,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감당할 수 없는 채무 등의 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소망이 막히고 꿈이 꺾인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저 너머로 가야 하는데, 산이 가로막혀 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산을 옮겨보려 애쓴다. 삽을 가져와서 흙을 퍼내기도 하고, 불도저를 동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림도 없다. 결국 낙심한다. 실망하고 좌절한다.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원망까지는 몰라도 하나님께 실망한다. 산 앞에서 하나님께 등을 돌린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 그림자를 옮기려 한 것이다! 산? 산은 그림자일 뿐이다. 보이는 산은 실체가 아니다. 아무리 큰 산처럼 보여도,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그것은 모두 그림자일 뿐이다.

이것을 믿는가? 믿어야 한다. 오직 이 믿음만이 산을 옮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보이는 산이 실체다.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산. 내 인생을 막고 있는 항거 불능의 산! 이것이 실체로 보인다. 아니다. 그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그림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산을 옮길 수 있는가? 물론이다. 옮길 수 있다. “의사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요?” 아니. 하나님은 가능하다고 하신다. “은행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아니. 하나님은 가능하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저 그림자일 뿐이니까!

당신에게 이 ‘믿음’이 있는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 보이는 것은 그저 잠깐 있으면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세상을 살 수 있다.그렇다면 당신은 이 세상 원리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의 원리 속에서 살 수 있다. 어떻게? 믿음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계신다! 그분은 완전하시며, 그분은 전능하시며,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은 나를 위해 일하신다!” 이 믿음! 이 믿음이 있을 때, 당신은 이 세상과는 다른, 전혀 다른 원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산’은 보이는 세상의 원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거대한 장벽이지만, 영적 원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림자일 뿐이다. 아무리 거대한 산일지라도 그것은 그저 그림자이다! 믿음! 믿음! 이것이 우리를 다른 세상의 원리 속에 살아가도록 하는 열쇠다. 당신도 산을 옮길 수 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면. 겨자씨는 정말 작다.

†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마가복음 9장 23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 로마서 4장 18~21절

† 기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 아주 작은 믿음일지라도 이 믿음을 허락해주세요. 믿음으로 구하고 약속의 말씀에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 적용과 결단
지금 인생의 산을 마주하고 있습니까? 높은 산에 가로막혀 있습니까? 믿음을 가지십시오. 산을 옮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할 때, 비록 아주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이 산을 옮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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