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지혜’와 ‘믿음’이 첨예하게 대립될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을 때다. 살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가 있다. 도대체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허튼 실수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러시지?’ 싶은 이해 안 되는 상황을 만난다. 이 상황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혼과 영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시작한다.

혼이 이야기한다. ‘이건 뭐지? 하나님이 어떻게 내게 이러실 수가 있지?’ 하고 ‘왜’를 묻기 시작한다. 혼의 기능이다. 혼은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된다. ‘하나님, 어떻게 나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시험에 들고 영적으로 침체된다.

왜 영적으로 침체되는가? 혼(과 육)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영은 ‘믿는 것’이고 혼은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하려는 혼의 욕구, ‘왜’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이 혼의 욕구를 추구할 때, 우리 안에 영이 아니라 혼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혼(과 육)이 강화되면 당연히 영은 침체된다.

반면 혼과 대립되는 영의 반응이 있다. 영은 ‘왜’를 묻지 않는다.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냥 믿는다. 영은 ‘믿는 것’이다. 무엇을 믿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 영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다. 영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이 발휘될 때, 우리 영이 강해지기 시작한다. 믿음은 영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이 성장하고 강해지는 ‘영적 성장’은 대부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이루어진다. 모든 것이 다 이해되고, 모든 것이 다 완벽한 상황 속에서는 믿음이 발휘될 여지가 없다. 그냥 이해하면 되는데 무슨 믿음….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날 때, 혼의 기능으로는 더 이상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순간이 이를 때, 여기서 비로소 우리 영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믿음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우리 혼의 작동이 멈추는 그 곳, 거기서 비로소 우리 영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십니다!” 이 믿음!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십니다!” 이 믿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발휘될 때 비로소 영적 성장이 일어난다.

혹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갇혀 있는가? 하나님이 왜 이러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다 이해하려 하지 말라. 우리의 영성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믿음으로 통과할 때, 그때 만들어진다. 다 이해되는 상황을 통과할 때는 혼만 커지지 영이 성장하지 않는다. 다 이해할 수 있는데 뭐 굳이 다른 것이 필요하겠는가? 이해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통과할 때는 어떤가? 혼의 생각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우리 안에 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할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절망 속에서도 나는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신뢰할 것인가?’ 내 안에서 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언제? 혼의 기능이 멈춘 그 때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혼이 더 이상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그 때에 비로소 우리 안에 영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에게 언제 영적인 권위가 부어지는지 아는가? 바로 억울한 일을 묵묵히 통과할 때다. 영적인 권위가 부어지는 것에는 원리가 있다. 단순히 성경 지식이 많다고 권위가 부어지지 않는다. 단순히 신학을 공부했다고 영적 권위가 부어지지 않는다. 지식은 교만하게 할 뿐이다.

그러면 언제 영적 권위가 부어지는가? 억울한 일! 이해할 수 없는 일! 이 상황 속에서 묵묵히 하나님을 의지할 때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 불평도 없이, 아무 원망도 없이, 그저 묵묵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완전하심을 의지하며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통과할 때 위로부터 권위가 임한다. 예수께서도 그렇게 권위를 얻으셨다.

[빌 2:8-10]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예수께서도 억울한 십자가의 길, 이해할 수 없는 그 길을 묵묵히 통과하셨다. 하나님의 완전하심과 선하심을 믿으며,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 불평 없이, 아무 원망도 없이 그 상황을 통과하셨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

이것이 영적 세계의 원리다. 혹시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을 통과하고 있는가? 묵묵히 통과하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권위를 부여하려 하고 계신 것이다.

당신의 삶은 혼을 강화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영을 강화시키고 있는가? 당신은 영적인 원리를 따라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육의 원리만을 따라 살고 있는가? 영적인 원리를 따라 살라. 그래야 영적인 삶 – 질서와 평안과 안식과 기쁨이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혹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용서하라. 육체를 따라 나누인 삶을 살지 말라. 하나 됨은 당신에게 축복이다. 혹시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는가? 그렇다면 다 이해하려 하지 말라. 어차피 인생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억울한 상황 속에 있는가? 괜찮다. 불의한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한 일상, ‘불의한 일상’을 사용하셔서 당신을 더 높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다 이해하고, 다 해결되는 인생에는 영적인 상급이 없다. 영적인 권위는 억울한 일을 묵묵히 통과할 때,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따를 때, 시험에 들지 않고 한결같이 그 자리, 예배의 자리를 지킬 때, 거기서 부어진다. 억울한 일은 우리를 더 높은 권위로 올라가게 할 것이다.

사울에게 쫓겼던 다윗처럼 하나님은 불의한 일상을 통해 영적 권위를 주신다.

†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로마서 1장 17절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히브리서 11장 6절

† 기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제 주변에서 일어나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선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믿음을 부어주시옵소서.

† 적용과 결단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유혹이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영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믿음을 발휘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오늘의 믿음을 발휘해야 할 ‘억을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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