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 이야기는 거의 2천 년 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처럼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부르셨다.

그 당시 어떤 랍비가 누군가를 제자로 불렀다는 것이 곧, 제자가 스승의 모든 것을 믿고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제자로 부름 받은 자는 그야말로 ‘배우는 자’로 존재하며 진짜 믿고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지금 당신도 그렇다. 예수님의 인내와 은혜가 있었기에 선택받았다. 이렇게 크리스천이 되었다. 문제는 ‘지금’이다. 정말 예수님이 당신을 살리시는 유일한 분이신가? 가룟 유다와 같은 상황, 예수님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의 방법을 좇아 그분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은 겟세마네 기도를 보여준다. 예수님이 거기서 살리는 기도를 하시며 먼저 모범을 보이셨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겼다. 그 기도로 유다는 살릴 수 없었는가?

짧게 답하자면, 둘 다였다.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살릴 수 없었다.

살릴 수 있는 분이 오셨다. 심지어 기도할 필요가 없는 능력자셨다. 그분께서 살리는 기도의 모범을 몸소 보이셨다.

하지만 유다는 살 수 없었다. 살리는 기도의 무능력이 아니라 죽을 인생의 죽겠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그를 보며 우리도 깨닫는다. 살리는 기도는 무능하지 않다. 목이 곧은 죄인이 죽음을 끝까지 선택하는 것이 문제다. 배교를 고집하고, 끝까지 회개치 않으면 살 수 없다.

가룟 유다 구원의 문제가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크리스천에게 꼭 필요한 지식 중 하나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지가 제자 인생의 핵심이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 고후 13:5

어제 믿었다고 오늘 안 믿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이단들의 전유물이다. 예수님 계신 곳에 함께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유일한 구원의 길로 날마다 믿고 또 믿어야 한다.

이에 걸맞지 않은 생각과 행위는 회개해야 한다. 자의적 뉘우침으로는 살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용서의 능력이 있는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고 그분께 회개할 일들을 맡겨야 산다(고전 9:27; 15:31).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 말이다. 날마다 그 구원에 합당한 자답게 믿음으로 일관할 때 산다.

† 말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히브리서 11장 6절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요한복음 14장 21절

† 기도 
하나님, 당신만이 저를 온전히 살리는 분이십니다. 저에게도 그러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내 뜻과 방법을 좇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지금, 진짜 믿고 따르는 믿음을 선택하며 주님의 참 제자가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살리는 기도를 하기 위해 이렇게 자문해봅시다. 나는 그리스도의 살리는 기도를 받을 만한 사람인가? 나는 예수님을 정말 믿는가? 혹시 예수님 곁을 그저 배회 중인 것은 아닌가?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온갖 사역을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회개치 않는 사람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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