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부모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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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천사같던 아이가 어느덧 눈빛이 살짝 달라지고 살을 부비며 다가오던 아이가 조금씩 거리를 둘때 부모도 사람인지라 상처를 받습니다. 가끔은 깊은 좌절과 슬픔이 올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를 포기할 수 없는건 단 하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오늘도 그 아이를 향해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_시 146:5

남편과 함께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14년을 달려왔다. 우리가 가진 복음의 열정만큼 아이들이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녀가 많은 것은 분명 복이지만, 복이라는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아이들로 인해 크게 낙심한 적도 몇 번 있다.
부모라면 겪는 과정이지만 예방 없이 맞는 일들로 인해 마음이 무너져내릴 때가 있었다. 상처에 딱지가 덮일 때까지는 쓰라린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때 남편의 일기가 참 위로가 되었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책장에 꽂혀 있는 다른 노트를 찾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단다. 아내는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마디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내의 반응에 궁금해서 일기장을 열어 보니 엄마가 훈계할 때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필터링 없이 써놓은 말에 아내가 크게 상처받을 게 뻔히 보였다. 겨우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쓴 글이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기 위해 써놓은 글들로 아내에게 떨어진 오물은 씻겨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글도 감정도 과거의 것이었지만 글에 묻은 감정은 현재 아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방에 들어가 보니 아내는 울고 있었다.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조금 잠잠해지다가도 이내 또 울음이 터졌다. 그동안 믿음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했기에 그만큼 배신감과 서운함에 마음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말했다.
“그래도 아빠는 자기를 이해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어서 다행이에요.”

엄마로 인한 일들을 나한테 전화해서 일러바치곤 했는데, 그때 감정을 받아준 것이 아빠에 대한 적대심이 없는 이유였다.

난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아내의 헌신과 사랑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난 한참을 안고 잠들 때까지 아내의 손을 잡아주었다. 미안했다. 혼자 감당하는 엄마의 자리를 묵묵히 감당한 아내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였다. 그동안 아무 도움도 못 주었다는 자책에서 나온 미안함이었다.

다음날 아내가 말한다. 소망은 주님께만 있다고.
나도 시편 42편 말씀을 되뇌며 소망의 주님을 묵상한 차였는데, 우리에게 같은 마음을 주신 것이다. 아내는 훌훌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평소 하던 대로 하루를 보냈다. 뒤에서 안아오는 아이도 여전히 살갑게 받아주고 사랑해주었다.

자녀를 신앙으로 키우는 일에는 많은 헌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헌신은 때로 화살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이 일을 포기할 수 없다. 그만두어야 하는 많은 이유보다 지속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더 크기 때문이다. 그 한 가지 이유는 ‘복음’이다.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알려주는 것 말이다. 때론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지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니니까, 오늘도 주님의 소망에 붙들려 아픈 마음을 딛고 다시 일어난 아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힘내라고, 사랑한다고.

24시간 함께 지내는 아이들에게 엄마의 모습이 다 좋을 수 없다. 하지만 최고의 엄마는 아니어도 좋은 엄마는 될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내 마음이 진실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참 감사했던 건 아이가 다른 방법이 아닌 일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해소하려고 애썼다는 것, 욕이나 거친 말들로 엄마를 비방하지 않았다는 것, 아버지를 든든한 지원군으로 생각하고 힘을 얻었다는 것, 아이도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방법으로 접근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부모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의 문제는 부모의 실력과 부모다움을 검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저 그 순간에 조용한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며, 새로운 시각으로 아이를 바라볼 기회가 생겼다고 여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깨달은 것은,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믿음과 신앙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참 더디고 느리다. 세상의 교육처럼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는다. 인내와 연단의 시간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때마다 소망을 자녀에게 두면 낙심과 포기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일을 만드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그분이 도우시고 변화의 자리에서 소망을 이루어가심을 보게 될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_롬 5:3,4
<엄마표 신앙교육>백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