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많은 이들이 이 말씀을, 주님을 따르는 좁은 길은 가기가 매우 어려운 길이라고 해석한다. “찾는 자가 적음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글성경의 번역으로는 오해할 소지가 있다. ‘찾는 이가 적다’라는 표현은 영어의 ‘seek’(구하다, 추구하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좁은 길은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인기 없는 길이라고 단정하는 실수를 낳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only a few find it’이라고 되어 있다. 즉, 생명의 길로 진입하는 입구는 매우 작은 까닭에 사람들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 앞을 오가도 좁은 문과 그 뒤에 펼쳐지는 협착한 길을 발견하는 것은 극히 소수의 사람이다. 그 문과 길은 심혈을 기울여 조심스럽게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되지 않는, 비밀에 싸여 있는 감춰진 길이라는 것이다. 익숙한 고정관념의 표면을 찢고 더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십중팔구 그대로 스쳐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이 작은 입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인생에 들어선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인기 없는 삶을 받아들인다는 뜻도 아니다.

다른 이들은 엄두도 못 내는 고고한 삶을 살아간다는 뜻도 물론 아니다. 만일 좁은 문의 근본적 의미가 이런 것들이었다면 우리 인생의 형태는 도(道)를 찾는 불교의 스님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문’이 아닌 ‘길’만이 강조된다면 말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주님은 자신에 대해 너무나 명확하게 소개하신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 요 10:9

우리는 진정 좁은 문을 통하여 그 길에 들어갔는가? 스스로 협착한 길을 걷고 있다고 굳게 믿으며 자화자찬하고 있거나, 혹은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좁은 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흠모하기보다 좁은 문은 안중에 두지 않은 채 주님을 위해 고통받고 희생하고 고생하는 것이 협착한 길을 걷는 위대한 삶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좁은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나누기보다 오히려 그 길을 제시하는 누군가의 간증에 더 열광하는 것은 아닌가? 예배를 마치고 나설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경험을 선물하기보다 ‘착하게 살자,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과 결단을 이끌어내는 데만 급급해 있지 않은가?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교회를 드나들며 은혜를 받았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문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모두 좁은 문을 발견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이 순간에도 자신이 협착한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한 채 여전히 열심히 넓은 길로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협착한 길은 반드시 좁은 문에서만 출발할 수 있다. 좁은 문은 예수 그리스도 유일한 한 분이시다!

스스로 협착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간증이 있다. 주님을 위해 어떻게 희생했는지에 대한 간증이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그들과 교제하다 보면 그들 안에 나름의 영웅 의식이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것은 ‘자기의’다. 자아가 형태만 바꿨을 뿐 여전히 전혀 죽지 않았다는 증거다. 나는 이들이 안타깝다. 왜냐하면 그들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여전히 넓은 길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희생을 희생으로 해석하지 않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를 진정 사랑한다면 그 대상을 위해 생명을 바친다 해도 그것을 절대 희생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진정 협착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그러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그는 주님을 사랑하고 흠모하고 자랑하기에 바쁠 것이다. 주님과 함께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기 때문이다. 진정 협착한 길을 가는 사람의 입술에는 “주님을 위하여 내가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라는 생색 어린 고백이 없을 것이다. 주님 때문에 겪는 고난은 특권이고 상급이고 유업이기 때문이다.

진정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은 자신이 현재 주님을 위하여 좁은 길을 가고 있다는 영웅 의식도 없다. 그들에게는 유일한 단 한 분의 영웅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껏 찬양을 통해 수없이 고백했듯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디를 못 가겠는가!

 -가야 하는 길, 다니엘 김

† 말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 마태복음 7장 13, 14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로마서 8장 17절

† 기도
하나님, 생명의 길로 진입하는 그 입구, 그대로 스쳐 지나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익숙한 고정관념의 표면을 찢고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이 좋아 보기를 거절하지는 않았는지요. 예수님보다 주변의 것들이 더 좋아 주님은 신경쓰지도 않고 지나치지는 않았는지요. 이런 저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주님만 보겠습니다. 주님만 보겠습니다. 주님만 보겠습니다.

적용과 결단
나에게는 단 한 분의 영웅, 예수님만 있습니까? 너무 작아 보기를 거부하고 스쳐지나갔을 수 있는 좁은 문 되신 예수님. 그분을 더 사랑하고 흠모하고 자랑하기에 바쁜 당신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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