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돌라오멜의 세력에 맞서서 싸운 직후, 위대한 승리를 경험했다고는 하지만, 그 흥분의 열기가 가신 후에 찾아온 육신의 현실은 어땠을까. 나도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선교지에서 긴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흥분되어 고동치는 심장을 겨우 가라앉히며 억지로 잠을 청한다. 그러나 긴장을 완전히 풀고 잠이 드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한참을 뒤척이다가 어느 순간 깊은 잠에 들게 되면 그 잠에서 쉽게 깨어나지 못한다.

전쟁터에서 날카롭게 곤두섰던 신경이 드디어 안정을 되찾고, 잃어버렸던 조카가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아브라함도 이러한 ‘깊은 잠’에 빠져든 것이다. 이렇게 깊은 잠이 든 아브라함에게 ‘큰 흑암과 두려움’이 임하게 된다.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 창 15:12

이 부분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a thick and dreadful darkness came over him…”라고 되어 있다. 즉, 무겁고 두려운 흑암이 그를 덮쳤다는 표현이다. 아브라함을 습격한 어두움이 그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고 두려움은 그의 사지를 장악했다. 아브라함이 이런 심적 상태에 빠진 까닭으로 최소한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주변 국가들로부터 복수를 당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사건에서 유추해볼 때, 아브라함은 대범하고 도전적인 인물은 아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자신의 신변을 위해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일 정도였다. 그러나 롯을 향한 불타는 열정과 책임감이 그런 그를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전쟁의 긴장감과 승리의 흥분이 조금씩 가라앉을수록 이제부터 닥칠 현실이 걱정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성취한 승리에는 복수라는 대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둘째, 포기한 제물에 대한 책임 문제가 있었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소돔 왕이 아브라함에게 포로 되었던 백성은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 물품은 가지라고 제안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뜻밖의 태도를 취한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 창 14:22,23

너무나 멋있는 말이었지만, 아브라함은 그날 그 모습을 목격한 주변 국가 왕들과 아내 사라를 비롯한 친족들에게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그 책임의 무게가 매우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으리라.

셋째, 저물어가는 인생에 대한 초조함과 절망감 때문이다. 당시 아브라함의 현실은 해가 지는 것과 흡사한 상황이었다. 시들어가는 인생, 여전히 잉태하지 못하는 아내, 그리고 별로 이룬 것이 없어 보이는 삶이었다. 나름 열심히 달려온 것 같은데, 돌아보면 딱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 같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많지 않은가? 세월의 급류 속에서 무기력하게 떠내려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완전히 탈진해버리고 만다.

큰 흑암의 공포 속에 주저앉아버린 종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창 15:1).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일러주신다.
가장 먼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방패라는 사실을 약속하신다.

“나는 네 방패요….”

어쩌면 아브라함에게 가장 필요했던 확신이 아니었을까. 다가오는 복수의 위험으로 위축되어 있는 그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었을 것이다. 주변 국가들의 공격에서 그를 지켜내시겠다는 주님의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라함은 소돔 왕의 상급을 거절했다. 주님이 채워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고, 주님께 온전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이런 이유로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눈앞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여전히 막막하고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런 아브라함에게 필요했던 위로는 주님이 아브라함의 상급이 되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천성을 향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동일하게 꼭 필요한 음성이다.

눈앞에 펼쳐진 땅에 정착할 수많은 기회를 뒤로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에 바빴던 지난 삶. 참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돌아보면 딱히 이룬 것이 없어 보일 때가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 대보니 높이 평가받을 만한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니고, 재산을 모으지도 못했고, 안정된 미래는커녕 오늘의 현실이 버겁기만 하다. 한평생 선교지에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일했건만 은퇴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런 현실에 맞닥뜨리곤 하신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다. 신실하신 주님이 모든 순례자들의 상급이 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두려움을 해결하셨다. 하나님이 친히 방패가 되어주신다고 하셨기에 주변 국가들의 복수의 위협에 놓이게 되었다. 거절한 물질로 인한 책임감의 부담에 대해 주님이 상급이 되어주신다고 하셨으니 역시 위로가 된다. 그러나 자녀가 없는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창 15:5)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돕기 위해 그가 서 있는 장소를 옮기시고 그의 시선을 교정해주신다. 즉, 갇혀 있는 삶의 현실에서 벗어나게 하셨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장막 밖으로 이끌어내신 것은 회피가 아니라 현실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잠시 그곳을 벗어나게 하신 것이다. 천막 속에만 갇혀 있으면 우울의 소용돌이로부터 탈출이 불가능하기에 밖으로 이끌어 나오셨던 것이다.

장막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하늘에 빛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없다. 우울한 그 방에서 나와 주님의 창조 세계를 보라! 자책의 음성만 증폭되는 환경에서 눈을 들어 천지를 창조하시고, 열방을 경영하시며,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대하시는 주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라!

이 세상의 모든 대단함은 결국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 수 있고, 그 순간 나의 지극히 작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하늘을 바라보게 하신 주님은 이제 별의 숫자를 셀 수 있는지 고민하게 하신다. 별을 셀 수 있다면 한번 해보라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당연히 하늘의 별은 셀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존재다. 자신의 한계를 분명하고 절실히 깨닫게 하시길 원하셨던 것이다.

-가야 하는 길, 다니엘 김

† 말씀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 창세기 15장 2절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 시편 28편 7절

† 기도
하나님, 열심히 달려온 것 같지만 손에 잡히는 것 없이 한참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순간 듭니다. 이런 저를 붙잡아주소서. 위축된 삶 속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내가 너의 방패이며 상급이라고 말씀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하소서.

† 적용과 결단
오늘의 현실은 우리를 버겁게 합니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돌아보면 딱히 이룬 것 없어 보일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상급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내가 처한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기를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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