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창 21:1)

주님이 사라를 돌보셨다는 것은 그녀를 찾아와주셨다는 뜻이다.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로 인해 여인들은 충분히 소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거의 모든 계획이 아브라함을 통해 통보되었고 집행되었다. 아브라함이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사라는 그 그림자에 가려져 소외되어갔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아브라함을 방문한 손님들이 사라를 찾았다.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 창 18:9

사실, 주님과 아브라함이 나눈 대화도 사라가 듣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진행되지 않았는가? 아들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라는 ‘속으로 웃고’ 혼잣말로 반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 혼잣말을 주님은 들으셨다. 그녀에게 관심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녀가 이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잘 알고 계셨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우리 아버지는 엄격하고 자기관리가 정확하며 표현이 무뚝뚝한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자상한 아버지들을 보며 부러워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버지는 분명히 나를 사랑하고 계셨다. 단지 표현을 잘 못하시는 것뿐이었다.

가끔 아침에 일어나서 거실로 나가다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시는 대화를 들었던 적이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나에 대한 사랑과 염려와 기대를 털어놓으셨다. 평소 아버지의 입술로 내가 직접 듣지 못하는 고백들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본심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내가 그 문 뒤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도중에 대화를 중단하지 않고 말씀을 이어가신 것은 내가 그 말을 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마음이 아들인 내게 전달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본심을 확인시켜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주님은 그날 문 뒤에 서서 듣고 있는 사라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은 그녀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혼자 무슨 말을 중얼거리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주셨다. 그럼에도 주님은 그녀가 밖으로 나오기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녀가 안심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좋은 소식을 전달받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그녀를 돌보셨다.

한 가지 더 주목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아들을 낳게 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사라는 속으로 웃었다. 이것은 감격과 행복의 미소가 아니라 비웃음을 뜻한다. 주님은 즉각 반응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창 18:13).

이 지적에 사라는 웃지 않았다며 변명한다.
그러나 주님은 반복하여 그녀가 웃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셨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창 18:15).

참 희한한 장면이다. 어찌 보면, 어린아이들이 서로 말싸움하는 것 같은 장면 아닌가?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에 “아냐, 난 그렇게 말한 적 없어”라는 주장으로 서로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 않은가? 너무나 흔하고 한편 유치한 것도 같은 이런 대화를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과 나눴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그날, 주님은 사라에게 한 가지 단어를 의도적으로 깊이 주입시켜주셨다. 우선 그녀가 비웃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시켜주시며, 당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이제 곧 모든 것이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비관적인 비웃음이 순수한 웃음으로 바뀌게 될 것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해 무너진 자존감으로 초라했던 그녀는 칭찬의 대상이 될 것이고, 우울했던 자리에서 다시 소망을 품는 기적을 맛보게 될 것이었다. 무의미하게만 보였던 인생에 드디어 생기가 맴도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었다.

자신이 한때 자조적으로 비웃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언젠가 진심으로 웃을 날이 와도 주님이 이루신 위대한 역사를 인지하지 못하고 무감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자신의 모습을 똑똑히 인식했던 사라는 변화의 날 진심으로 감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인생 역전을 기념하여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삭’이란 이름은 ‘웃음소리’란 뜻이다. 즉, 사라가 남은 인생을 살아가며 이삭을 부를 때마다 그녀는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고, 오늘의 삶에 대해 주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되었을 것이며, 그리고 속으로 웃으며 혼자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주님, 전 이제 진짜로 웃을 수 있어요. 제 인생에 이렇게 웃을 날이 다시 올 거라 생각 못 했어요.’

-가야 하는 길, 다니엘 김

† 말씀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로마서 15장 13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 시편 42편 5절

† 기도
하나님, 모든 희망이 메말라버린 사라를 돌봐주셨던 것처럼 언제나 저를 돌봐주고 계심을 고백합니다. 그녀가 순수하게 진짜 웃을 수 있었던 것처럼 동일한 은혜를 허락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참된 기쁨과 은혜, 웃음을 허락하소서.

† 적용과 결단
세상의 모든 것들로 인한 기쁨과 웃음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나의 참된 기쁨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 38,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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