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순종의 제사는 사랑으로 완성된다.

그날, 모리아산에서 드려진 제사는 아브라함만의 작품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공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이삭은 자신의 육신의 아버지를 신뢰하고 있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이에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순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삭의 정확한 나이는 확실하지 않다. 어떤 신학자는 12세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어떤 이들은 25세, 또 어떤 이들은 33세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심지어 3세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 정확한 나이를 알 길은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귀가 운반했던 땔나무를 자신이 대신 짊어지고 산을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나이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하고자 할 때 충분히 뿌리치고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칼이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려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잠잠하였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 창 22:9,10

이삭이 대항하고 반항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아버지를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자신을 완전히 맡긴 것이다.

그들이 산에 오르는 과정을 보면, 평소에 이삭이 아버지를 어떻게 대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 창 22:7

“내 아버지여….” 아버지를 우러러보고 사랑하는 이삭의 목소리가 느껴지지 않는가? 그는 아버지에게 정답게 속삭이는 것에 매우 익숙했던 것 같다.

또 그들이 동행하는 장면은 어떠한가?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창 22:6

이것은 그들이 단순히 함께 이동했다는 뜻이 아니다.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라는 대목을 오래된 영어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 and they went both of them together”(KJV).

이것은 아버지가 그 안에 있었고, 그가 아버지 안에 있었음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서로 아끼고, 존중하고, 믿어주고, 의지하고,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제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보며 이삭에 대하여 감탄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이 말씀을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해석한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친 것에 큰 존경심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날 제단 위에 드려진 아들이 이삭이었기 때문에 이 제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만약 이스마엘이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자신을 향해 칼을 든 아버지에게 그가 먼저 공격을 가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손과 발의 결박을 스스로 풀고 제단에서 내려와 도망쳤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율법의 상징이다. 율법은 의무 위주의 관계다. 복 받기 위해서든 벌을 면하기 위해서든, 의무감으로 율법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경우, 의무가 순종의 원료가 된다. 그리고 의무의 배후에는 상호이익이라는 계산이 숨어 있다. 즉, 의무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한계 내에서 행하는 것을 순종의 기준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율법 안에서는 그 이상을 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이삭은 은혜의 상징이다. 은혜는 사랑 위주의 관계다. 여기서 목격할 수 있는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관계의 주된 원료는 사랑이었다. 사랑에는 계산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랑으로 말미암는 순종은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요구된 것 이상으로 헌신한다. 충분히 바쳤는데 더 바쳐도 아깝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스마엘은 자기가 13세 때 할례를 받음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스스로 대단하게 여겨졌겠지만, 이삭은 죽임을 당하는 것까지도 기쁨으로 순종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장자의 피를 요구하셨다. 그러나 대속물을 허락하시고, 그 아들의 생명은 취하지 않으셨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모리아산에서 죽임을 당한 한 아들이 있다. 그 아들도 아버지를 무척 사랑했고, 아버지께 순종하였다. 그 아들도 나무를 지고 산에 올랐다. 그리고 못으로 결박되고 인류를 구원하는 대속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었다.

그날은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향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칼은 멈추지 않았으며, 사형은 완전하게 집행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예배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우리의 헌신도, 섬김도, 찬양도 불순하고 부정하다는 현실을 우리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으리라. 순종을 하기보다 불순종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대속제물로 우리를 온전케 하셨다는 복음이다!

아름다운 제단이 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십자가다! 영원한 언약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덮인 우리는 아버지께 합당한 거룩한 산 제물이라는 사실이다!

-가야 하는 길, 다니엘 김

† 말씀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신명기 6장 5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요한일서 4장 10절

† 기도
하나님, 계산하지 않는, 이익을 구하지 않는 그런 사랑을 주님과 하게 하소서. 주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순종을 하게 하소서. 요구된 것 이상으로 헌신하며 나아가는 자 되게 하소서.

적용과 결단
의무가 아닌 사랑이 원료가 되는 관계! 당신도 원하십니까? 사랑에는 계산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과 당신의 관계 역시 이러한 관계가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기를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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