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은 불행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나라는 정복당했고, 어린 나이에 자기 나라를 망하게 한 원수의 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다니엘이 역사에 함몰되어 하루아침에 비극의 한복판으로 끌려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이름을 빼앗기는 등 엄청난 수모를 겪는다.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메삭이라 하고 아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 – 단 1:6,7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라는 뜻인데, 바뀐 그의 이름인 벨드사살은 ‘벨이여, 나의 생명을 보호하소서’라는 뜻이다. 여기서 ‘벨’은 바벨론의 신을 가리킨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초라한 이방 잡신을 섬기는 이름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바벨론 왕에게 충성을 강요당하는 불행한 일이 펼쳐졌다.

다니엘이 가졌던 자괴감이 얼마나 컸을까? 원래 청소년기는 생각이 많고 방황하는 시기이니 하나님을 원망하기 쉬운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니엘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비극이 초래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고 배교했기 때문이었다. 그 죄의 대가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항상 자기들이 한 짓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만 원망한다. 왜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도와주지 않으시냐고, 왜 우리 민족이 이런 멸망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시냐고, 하나님이 무능하신 것 아니냐고, 하나님이 안 계신 것 아니냐고 원망한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니엘은 그러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했고, 바울이 말한 것처럼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면서 살았다. 그 결과 페르시아 제국의 중앙 총리로 임명 받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다.

바벨론이 망하고 페르시아가 다시 패권을 잡아 왕조가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다니엘은 왕조를 뛰어넘는 인정을 받았기에 이런 중직을 맡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이런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먼저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절대 감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단 6:10

페르시아제국의 총리로 임명받은 후, 노년의 다니엘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급부상하는 다니엘을 경계한 정적들이 그에게 올가미를 씌운 것이었다. 다니엘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었다. 곧 하나님을 배신하고 목숨을 부지하거나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고 사자 굴에 끌려가 죽임당하는 것이었다.

다니엘은 이 두 갈래 길에서 후자를 택한다. 다시 말해 죽음을 택한다. 대단한 믿음 아닌가?

더 중요한 것은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그가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런 다니엘의 모습에서 빅터 프랭클이 한 말이 떠올랐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아 갈 수 없다. 어떠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이것이 딱 다니엘을 두고 하는 말 같지 않은가? 이처럼 다니엘에게는 현실의 상황을 뛰어넘는 절대 믿음과 절대 감사가 있었다. 나는 이처럼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는 감사를 가르치는 곳이 교회라고 믿는다.

나는 다니엘을 보며 감사와 관련해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다. ‘감사는 선택’이라는 사실이다. 다니엘에게서는 감사할 조건이 하나도 없었다. 감사는 커녕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악한 정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황이었고, 그들의 올가미에 갇혀버렸다. 죽음이 자기를 기다릴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니엘은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다니엘이 불안 대신에 감사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엘에게 배운 것이 이것이다.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를 낳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감사는 선택이다. 객관적으로 너무나 풍요로운 것이 많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감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를 택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다니엘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원리이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 단 1:8 그는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그것에 끌려다니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환경에 물들지 않는 깨끗한 삶을 살 수 있었고,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었다. 우리도 이 원리를 배워서 다니엘처럼 환경을 탓하지 않고 감사를 선택할 줄 아는 능력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 감사, 이찬수

† 말씀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시편 107장 1절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에베소서 5장 20, 21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 골로새서 3장 15절

† 기도
힘든 순간에도 감사를 선택한 다니엘처럼 주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결단하며 나아가는 주님의 자녀되게 하소서. 오늘도 감사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어떤 상황에서도 당신은 감사를 선택하기로 결단했는가? 자신을 되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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